mouth/diary

사월 십일일

eeajik 2022. 4. 11. 19:32

글을 알려주는 길, 되짚어주며 발음하는 음독과 훈독. 거봉으로 만든 진토닉을 호랑이 천장 아래서 마셨지. 

 

머리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도 곱슬거리는 뒷머리는 정리하고 싶다. 어릴 적에 비해 반곱슬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곧은 머릿결을 부러워하며, 작은 귓불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피어싱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한 스물 아홉의 사월. 질투의 나쁜 나뭇가지들을 이겨내는 과정을 나는 더 따스한 마음으로 대하는 방법으로 택했다. 내가 가지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가진 것들로 더 너를 도울게. 그만큼 나보다 멀리 올라서고 청연하게 빛나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사용해서 부디 내가 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닿아주세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잃어버렸던 글자의 획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글을 적는 일은 소리를 짓는 일과 다름이 없어요. 재료를 고르는 것 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라는 친구의 말을 기억해요. 매 해 여름, 길을 잃을 듯이 한강을 찾아가도 도저히 열병이 낫지 않는 기분을 느꼈지. 아침마다 방의 천장이 붕괴하는 과정을 상상하고, 도심의 고음역대 소리를 피해 무겁고 긴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채 말 한마디 없이 아랫입술을 물었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손을 떨지 말자. 발 디디는 법이 익숙치 않아 휘청거리며 걷는 주제에 걸음을 재촉하는 방법만 알아서 나는 아직도 걸으며 물을 마시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지. 아직도 나는 걸음을 곧게 걷지 못한다. 

 

환각과 환청이 심하던 16년도, 시야 밖에서 다람쥐와 청설모가 뛰어다니며 형체 흐린 그림자가 나를 탓하는 소리만을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수많은 동물이 나를 지나칠 때 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향해 걸었다. 종종 너무 힘들 때엔 지금은 연락을 정리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무서워, 자꾸 다람쥐가 덤벼들어. 청설모가 도토리를 들고 달려가. 자꾸 개들이 보여, 낮게 끓는 듯이 그르렁대. 수 많은 회색 형체들이 나를 물어뜯을 듯이 욕지거리를 해. 사람이냐고? 아니야, 그건 아니야. 뭔지는 모르겠어, 도와줘. 부끄러운 말이지만 전화를 끊지 말아줘. 집에 갈 때 까지만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까. 너 약속 중인 거 아는데 미안해, 미안해. 매일 값싼 소주를 방에 늘어놓고 잠을 자고, 새벽녘의 갈증을 저렴한 미지근한 김 빠진 맥주로 대신하고 게워내며 후회하며 잠을 그만두었다. 사라진 두 어금니가 느껴질 때 마다 나는 그 해 여름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내 과오로 사라진 치아는 내가 잃어버린 그 계절과 닮아있다. 다시 가질 수 없고, 결국에는 부술 수 밖에 없던 치아의 파편. 다시 만질 수 없는 그 온도와 습기.

 

기타 녹음을 다시 시작해야한다. 새로운 팀에 함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