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사일
술도 잘 안 마시는, 이젠 예전에 비해 못 마시게 된 친구가 몇 달만에 전화를 걸었다. 낡은 이어폰이라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아 외부 소음이 반 이상인 전화를 몸서리치게 싫어하지만 이 친구의 전화는 받게 된다. 받는 편이다, 아니 받는다가 맞는 말이다. 나 너무 힘들어, 힘들어서 소주 두 병을 내리 마셨어. 너 어디야, 집 앞 국밥집에서 먹었어. 너 혼자야? 왜 혼자 그렇게 마셨어, 퇴근 언제 했어? 사는게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모르겠어. 너 얼마나 빨리 마신거야, 안 좋은 일 있던거야? 있지, 웃긴 이야기 해줄까? 나 12월 31일 23:50에 이빨이 깨졌어. 너 당뇨 때문이야? 너 뭐 챙겨 먹고 일하는거지? 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땅콩뿐이라 좋아하지도 않는데 먹다 이빨이 깨졌어. 바보같게도 당연히 이빨이 아니라 생각해서 술기운에 삼켰는데 이빨이 휑하더라. 나 이제 이빨이 2개나 없다. 병원에서 32만원을 불러서 결제하고 기분이 이상해서 술을 왈칵 마셨어, 왜 점차 지어야 하는 짐이 너무 많을까, 내가 다시 드럼을 칠 수 있을까, 우리 합주 할 수 있을까. 너 어디쯤 들어가고 있어, 오늘 덜 추워도 그래도 일월이야, 감기 걸려 너. 우리 볼 수 있겠지? 예전처럼 주마다 한 번은 합주 할 수 있을까? 우리 예전처럼 잠깐이나마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웃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서 들어가, 나도 일 마무리하고 올게. 힘내, 이 말 싫어했는데 이젠 이 말 밖에 생각이 안나, 힘내, 곧 만나자. 들어가, 들어가서 꼭 메세지 해. 다시 전화할게, 아프지 마라, 이렇게 말해도 넌 항상 아파할테지만. 바보같은 소리 말고 들어가, 잘 자. 힘 내, 힘내자. 그래.
근래 1년만에 체온의 기타에게 문자를 했다.
[새해 평안해, 눈보라가 하고 싶다.]
[가끔 합주하는 꿈을 꾸는 것 같네.]
[언젠가 다시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말이야.]
지금까지 걸어온 내 모든 걸음의 순간들은 왜 어째서일까. 나는 늘 짓고 울고 그리워하며 하지 못하는 일들만 늘어간다.
혼자서, 아무도 거치지 않고, 걸지 않고, 나는 보통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스스로와 승부를 한다. 누군가에게도 기대지 않고, 기대하려 하지 않아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외톨이처럼 지내게 되는 걸까. 그럼 이 모든게 내 탓일까. 나는 누군가 무얼 건네면 되려 날카롭게 상처주는 법만 아는 나쁜말 응답기같은걸까.
울음이 겉으로 나지 않고 심장 언저리에서 자꾸 작은 내가 운다. 이렇게 살아온 길을 누군가가 틀렸다고 말해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텐데.
나는 아름답지 않다. 다만 사소하게나마 아름답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완벽하고 싶었고, 매 순간 고혹적이고 싶었지만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네.
글도, 목소리도, 소리도, 외모도, 성정도 그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