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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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염과 후두염, 심한 역류성 식도염과 신경성 위염, 위경련. 종종 찾아오는 기흉. 오늘 병원에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눈 꼭 감고 결제하여 많은 약과 긴 수액 주사를 맞았다. 몸이 버틸 수 없게 아프다고 자각하며 산 적이 많지 않았는데, 오늘 눈을 뜨고 문득 [이제는 이렇게 나를 아프게 놓아두면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매번 나는 미래에 대한 계획 준비 단계에 내 건강이 가장 뒤에 있었고, 당장의 어떤 이룸과 성과를 위해서라면 내 건강에 관한 모든 것들을 먼저 포기했었다. 여전히 양쪽 어금니는 비어있고, 이관 개방증은 종종 심하며, 심각한 수전증과 수족냉증은 나 자신도 점차 심하다 자각하고 있다. 누군가 옆에 있던, 않던. 나는 단지 내 건강은 '다른 이가 엮이지 않은 온전히 나의 몫'이며 추후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은 것들에 정을 주지 않는다는 관점 탓인지 나를 깎아내고 갈아내며, 소비하며 공부하느라 나를 챙긴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깊은 이야기, 혹은 사소할 이야기를 앞으로도 나눌 사람이 있다. 감사한 선물과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요리와 선물을 건네고 싶은 사람이 있다. 식사를 하며 나를 찾아주는 사람 또한 있다. 스스로의 고민을 내게 솔직하게 말해주고 온연한 자신을 말해주는 이가 있다. 같이 영화를 보고 싶고, 전시와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좋은 가게를 찾아 같이 술 한 잔 나누며 음식과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줄 사람이 떠오르는 삶이라면, 나는 내 소리와 건강, 몸을 챙겨야 하는 단계를 놓치면 안 된다. 나를 방치하면 안 된다. 

 

오늘 오전 뜬금없게 이동욱씨가 나온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평소 이런 유튜브 등의 가십거리 계열이나 OTT를 보지 않았다만 오래 전 부터 좋아하고 아름답다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잠깐 보다 문득 이동욱씨의 나이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나보다 13살이 많았다. 그럼에도 저렇게 아름답게 피부를 관리하고, 몸을 가꾸는 모습을 보며 어떤 확신도 들었던 듯 하다. 건강한 대화, 젠틀한 예의, 오랜 뒤를 보는 신중한 어법. 나는 고작 서른이고, 내가 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들은 많기에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관리를 해야한다. 담배 가게를 나온 순간부터 나를 다듬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멋진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네. 요즈음은 물을 자주 마셔보려 노력한다. 텀블러에도 가득, 몬스터와 핫식스보다는 최대한 보리차. 술을 마실 때도 내게 잘 맞지 않는 맥주는 최대한 자제하려하고, 소주나 사케를 마신다면 물을 옆에 가져다두고 마신다. 저녁엔 가지고 있던 샘플 앰플들과 여러 화장품으로 얼굴을 다듬고 늦지 않은 시간이라면 저렴한 팩이더라도 꼭 해본다. 나는 저렇게 멋지게 나이들어고 싶어. 그렇다면 나를 더 청결하고 완벽하게, 단정하고 선명하게 그릇을 빚듯이 다루어야 한다. 

 

근래 저녁에 걸을 일이 종종 생긴다. 어쩌면 나는 이 사소한 루틴이 절실히 필요했던 듯 하다. 실제로 강으로 산책을 떠난 것도 제법 오래 전이니까. 물가에 비친 도심의 조명이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찰나의 순간으로 지난 몇 년을 너무 아프게 버티며 꾸역 지내왔다. 침착하고, 진정하자. 나는 단지 걸음과 대화로써도 충분히 차분해지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일종의 침묵과 고요는 상황 판별을 올바르게 하고 나를 만든다. 잊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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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란 건 무엇이고, 수용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호의가 담긴 선물 혹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치 않던 나는 일전에는 미숙한 어린 마음에 부끄럽지만 오히려 거절하고, 한 걸음 멀어지는 방법을 택했었다. 내 생일 등의 기념일을 숨기는 일에 익숙해지고, 오히려 혼자 보내는 매일에 대해 익숙한 방법을 찾아가는 편이었다. 몇 년 전 쯤 부터 감사한 마음 덕분에 마냥 호의와 선물을 거절하는 것 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선물하는 법이란 사실을 배웠고, 마음도 동시에 그렇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어쩌면 사실 이전에는 물질적인 선물보다 오히려 마음이 더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었던 듯 하다. 마음의 무게는 내게 정말 무거운 편이기에 상대방이 그 모든 것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알아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던 듯 하다. 상대의 일이 바쁘고 힘들테니 작은 마실거리와 간단한 간식 쿠폰을 보낸다던지, 좋아하는 식사 메뉴를 선물하거나 같이 나눈다던지, 서툴지만 요리를 만들어주거나 건강을 걱정해주며 돕는다던지. 그렇게 나는 호의와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을 그맘때 쯤 배웠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삶에서 금전적인 여유와 미래의 내 음악, 모습을 먼저 생각하는 나로썬 직설적이게 닿을 수 있는 호의는 익숙하지 못한 편인 터라 나는 항상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돕는 호의만을 주로 해왔던 듯 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닿지 않거나 부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최근 너무나도 감사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감사한 선물도 종종 받게 되었다. 내가 되려 건네는 모든 것들이 사소해질 수 밖에 없는 크나큰 응원이 담긴 선물과 여러 마음들. 고운 구석이 없는 모자란 내 얼굴과 흉한 몸을 아름답게 촬영해주신 사진과 영상들, 시간과 금전을 낼 수 밖에 없는 다소 번거로우셨을 카드와 스티커 등의 감사한 굿즈들, 디저트를 좋아한다니 매번 챙겨주시는 쿠키 등의 스위츠,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나를 걱정하여 달려와주는 마음과 약, 혹시라도 휴일 근무와 이후 돌아가는 길이 씁쓸하진 않을지 걱정해주어 건네는 음식과 편지, 책과 향수를 좋아한다니 건네주신 서적과 향수들, 몸을 다듬는 걸 좋아하는 나를 알고 건네주신 여러 화장품과 관리 용품, 종종 장문의 메세지로 건네는 위로와 격려까지. 글로 적자니 민망해질 정도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 처음에는 장문으로 거절했던 어떤 선물들도 있었지만,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의 많은 마음이 담긴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 하여 외려 나는 더 힘을 내야한다는 마음을 먹었다. 외려, 나 또한 그 상대에게 필요한 선물을 찾고 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떤 관계는 사람을 바꾼다. 늘 그랬듯, 좋은 방향으로도 혹여 안 좋은 방향으로도. 전자의 경우를 자주 느끼게 된 근래, 어쩌면 덕분에 조금은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보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호의를 표현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근래에는 꽤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감사하게도 나와 내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들, 알고 지냈지만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 내가 만나고 싶은 몇 사람들. 기쁘게도 그럴 때 마다 나는 내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말로써 상대에게 안정을 주는 법을 배웠다. 작은 호의와 짧은 시간이 얼마나 크게 와닿을 수 있는지, 귀가길 내 근무지에 들러 인사 혹은 간단한 선물을 주는 감사함이라던지. 어쩔 수 없게 누군가와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공연을 해야 하거나 작업 혹은 레슨이 있는 날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나의 일정을 먼저 두게 된다. 수익원과 근속이 불투명한 불안함. 매장 일을 그만둔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구직 사이트를 습관처럼 들여다본다. 이러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주변이 기다려주는 새로운 내 작업의 쾌적한 준비와 건강한 나, 그리고 수준 높은 강의와 레슨을 위해서 그만둔 것이니, 해야 할 일을 잘 하며 절약하고 감내하는 방법이 맞다.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있는 주변을 아끼고, 금전의 불안함 탓에 다시 잃지 말자.

 

강의가 끝날 1월에는 더 배움이 더뎌지는 나이가 되기 전 면허를 따야한다. 몇 번이고 주변 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아 어릴 적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늘 그렇듯 몇 가지의 큰 트라우마가 아니라면 나는 마음을 다듬고 이겨냈으니 해낼 수 있다. 분명 낙담할 일도 생기겠지만, 내가 운전을 할 일이 살면서 갑작스럽게 한 번은 있겠지 싶은 마음이다. 아마 이사에도 영향이 있을테지. 이사 또한 1월 전에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공간을 찾고 변화를 만드는 일은 분명 다사다난할테니 강의에 집중하여 잘 마치고 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긴 할 듯 하다. 빈 집에서 늦은 오후를 보내고 싶다. 비록 여유롭지 않았더라도, 산울림 소극장 앞 옥탑방이 내게는 너무나도 멋진 기억인 이유이겠지. 퇴근한 친구가 사 온 소주와 고량주, 간단한 안주에도 즐거웠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유가 존재했었던 듯 하다. 왔냐고, 문 열어주며 편안하게 쉬라 말하던 법을 다시금 찾아올 때가 되었다. 지금의 공간은 나에게 여러모로 눈치를 봐야하는 어려운 곳이기에 나는 늦은 시간에만 갈 수 있다는 강박 탓에 잃는 것들이 종종 생기는 편이네. 

 

애초에 돌이켜보면 항상 나에게 필요한건 온연한 침묵과 스스로가 사랑하는 방식의 여유였다. 재작년 이맘때 즈음부터 어쩌다보니 너무나도 갑작스레 생긴 여러 일들은 눈 앞의 질투 혹은 부러움과 자극을 불렀고, 그렇기에 멈추지 않고 숨을 가쁘게 쉬며 어떻게던 발악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며 어디에던 나의 이름을 만드려했다. 이제와서 생각하지만, 반은 성공이지만 반은 실패였다. 나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했고, 몇 소중한 사람은 심지어 저만치 잃었다. [어떤 곳]에서의 [누군가의 나]를 만든다는 모자란 생각을 왜 했을까. 나는 나 스스로 온연히 존재하며 관리해야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누군가가 옆에 존재하거나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온연한 나 스스로를 구축하는 법을 알았는데, 어떤 것에 눈과 귀가 팔렸는지 잠깐 정신을 잃었던 기분마저 든다. 우습지. 나는 내가 만들어온 지금의 나 자체만으로도 어디에서나 독보적일 수 있다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가득 섞인 확신을 왜 잃었던건지 의아하기까지하다.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홀로서 이렇게 나와 내 지식, 확신, 그리고 주변을 구축했다. 

 

어제부로 다음주부터는 매주 있던 작업이 없어졌다. 다른 작업은 되도록 잡지 않을 것이며, 소리를 만들고 강의 준비를 하자. 그럼에도 나는 매일 저녁 쉴 시간을 만들기로 스스로와 약속했고, 잊고 놓았던 피부 관리를 다시 하며 건강이 엮인 호흡기 관리도 다듬어보자. 다른 이에게 쓰는 시간을 조금만 더 내가 사용하고 싶은 곳에 사용하자. 내가 만나고 싶은 이를 만들고 걷고 싶은 곳을 걷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찾자. 

 

더는 내 소리를 미루지 않아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나는 많이 배웠고, 비워냈고, 엮어낼 준비가 되었다. 나를 아껴야 한다. 

 

글이 다소 난잡하지만 과하게 다듬지 말자. 어떤 순간의 기록은 다소 정리가 모자라기에 더 솔직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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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시작 전 혹은 위스키 마실 때 틀어두는 편 ..

먼저 잘라내어 잃고 애써 잊으려 노력한다, 가능한 곁만을 지속한다. 단 두 가지의 선택폭으로만 지내온 편이다. 이 또한 균일하지 않은 유년 탓에 뒤틀린 결핍의 일부일까. 작업 때 약간의 문제라도 있는 소스라면 바로 다시 녹음하는 습관도 같은 사유가 있을까. 언제나 중간 지점을 찾는 내가 유일하게 극단적인 부분이구나 싶다. 근래에는 어쩌면 내가 어떤 결핍을 나 스스로도 모른 채, 혹은 모르는 척 지내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그렇게나 곁을 두지 않고 밀어내면서, 정작 몸이 지치고 마음이 닳아 가끔 술에 취하면 울며 이름을 부르는 내 모습을 나는 기억하니까. 차라리 취중의 기억이 나지 않으면 좋을텐데, 이상한 습관이지만 여전히 취기 섞인 기억을 나는 쉽게 잊지 못한다. 매일 손이 차가워지고, 매일 눈 밑이 파르르 떨리며 입술이 상한다. 누구의 탓도 아닌 걸 나도 알고 있다. 

 

몸무게가 조금 늘었다. 평소처럼 53kg 언저리겠거니 싶었다만, 오늘 아침 확인해보니 58kg. 감사하게도 선물받은 디저트 외엔 무언가 과식한 기억은 많지 않다만, 확실히 근래 술자리가 조금 많이 있던 탓일까. 일마레와 클럽빵 공연 이후 오랜만에 뒷풀이도 조금 오래 있었고, 주량에도 맞지 않게 술을 많이 마시긴 했다. 좋은 기억이지만 왜인지 항상 돌아오는 택시 안은 서늘하고 쓸쓸하던 기억만 남아있다. 돌아가는 곳이 정말 돌아갈 곳이 아니라는 마음 탓인지, 이렇게 연소된 시간이 아쉬운 탓인지. 매일 그렇게 흐르는 시간이 아쉽다. 지나온 시간이 슬프고, 내일이 무섭다. 살아감에 있어 무차별적으로 기댈 곳을 찾는 이들은 그래서 그러는걸까.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없어진 요즘이다. 

 

누군가를 배웅하는 과정은 매번 마음이 이상하다. 생각해보니 게르다에서도 연주하며 가장 집중할 수 있고 좋아했던 곡은 Travel well, my dear 이었네. 나는 어쩌면 섬이 되고 싶은 것도 맞지만, 그 섬에 등대같은 무언가가 되고 싶은 걸까. 누군가가 들렀다 나설 때 길을 짚어줄 수 있는, 그런 낡고 작지만 온연한 등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스스로 체감하기에 돌이킬 수 없고 낡은, 무의미한 사람이기에, 누군가와 엮일 때 무언가를 줄 수 없는 것일터라 그러한 엮임이 없도록 정리하고픈게 아닐까 싶은. 

 

부탁으로 다시 복귀했던 일터를 정리한다. 기관지와 폐가 어릴 적 부터 굉장히 안 좋았던 편이지만 혼자 일할 수 있고 익숙한 일이기에 지속했어도 더 이상 목소리와 호흡을 망가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자꾸만 하대받는 상황과 부정적인 언행만을 가진 사람 밑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 같이 일하시던 새로 오신 분도 여러 이유로 정리를 진행하신다는데, 여기도 어쩌면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겠구나.

 

매일이 허공처럼 슬프다. 누군가 앞에서는 웃음만을 지녀야하기에 웃지만, 혼자 있을 때나 누군가 앞에서는 끝도 없이 슬퍼진다.

 

가을이다. 항상 이맘때는 마음이 미어지는 북풍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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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켠에 서서 먼저 지목받지 못한 채 어떻게던 기회를 얻기 위해 혼자 발악하며 사는 삶도 지겹고 지친다. 요즈음은 요통이 심하다. 공연을 한 번 마치고 내려오면 허리 뒷편이 아프고 발이 지친다. 내 마음의 허리와 발도 그렇게 지친걸까, 근래에는 기절하듯 잠에 들며 하루를 어찌 보낸건지 기억도잘 나지 않는다. 있죠, 삶은 보통 이상하리만치 무언가 하나 없어져도 어느 순간 잊혀지는 듯 해요. 언제나 나는 내게 먼저 손 내미는 이가 많지 않기에 내 스스로 무언가를 어떻게던 잡아채려 노력하며 살아온 듯 한데, 그 탓인지 중독적이다 싶게 일을 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여유의 생각을 가질 수 없도록 평안을 줄 수도 있는 주변을 지우는 나쁜 습관이 생겼나보다. 그렇게 누군가는 나를 잊고 나는 누군가를 잊으려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사람일테니까. 

 

날이 차다. 몸에 열이 많이 없는 탓에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써는 여전히 이맘때면 조금 두꺼워진 이불을 찾는다. 다 낡아서 해지고 색이 빠진 이불이지만, 나는 이 이불을 좋아하고 아끼게 되네. 낡고 해지면 보통 바로 정리하는 내게 침대와 이불은 유일하게 오래 된 낡은 내 물건이다. 좋아하지만 밖에 나설 때는 사용하지 않는 향수를 조금 뿌려둔 채 잠이 든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에너지 드링크는 너무 달지 않은 제품을 마신다. 혼자 종종 술을 마시고, 하루종일 노란색 메신저를 보지 않는 날도 종종 있다. 

 

저변에 서있는 기분이다. 혼자 해내기는 지치는 일들. 오늘 마지막 일요일 근무다. 다음주 이 시간엔 클럽빵에서 무언가를 엮고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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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밤이 삶의 연장을 억지로나마 다잡아주는 계절이다. 누군가의 글로 마음을 다치고, 누군가의 말로 마음을 여민다. 홀로서 무언가를 지으며 모든 말을 삼키어내는 내 고집이자 습관은 여전히 지금도 변치 않았지만, 몇 곳에서 보여지는 모습들로 누군가는 내 주변의 유대감 혹은 관계를 오해하고 만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이 매일을 지내며 누군가의 곁에 있길 두려워하고 걱정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스스로 누군가에게 쉽사리 곁을 내주지 못하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되니 참 우스운 일이네. 특히나 여러 일이 있던 이번 여름, 나는 더욱더 혼자가 아닌 집단과는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고, 불특정다수가 보는 곳에 무언가 적는 일에선 진담의 비중을 덜어냈다. 누군가에겐 다소 자랑으로 비쳐질 수 있는 글을 적지 않고, 누군가에게 칼을 겨누는 듯한 말을 자제하며, 누군가의 동정을 사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진 않은지 적어도 몇 번은 고민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내 성향이 속상하진 않다. 그저 다소 냉소적이고, 감정을 소모하는 일에 지쳐 겉으로 보여지기에 차분해지는 모습이 조소가 날 뿐이다.

 

홀로라는 말의 어원은 홀이다. 홀/짝 할 때의 그 홀. 곁이 없다는 뜻의 순우리말 어근. 생각해보니 영어로써의 홀도 그렇고 단어가 주는 영향 탓인지 다소 쓸쓸하고 얇은 느낌을 주는 듯 한다. 공연장 뒤편에 서서 앞을 바라보는 사람을 닮은 모습 같기도 하네. 근래에는 더욱 곁에 누군가 있을 때 문득 씁쓸해지고 마치 기흉처럼 폐 끝자락이 아파와 슬쩍 자리를 뜨게 된다.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될테니까, 라는 오래 전 부터 지녀온 기본적인 자조가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인지. 어떤 승려의 조언처럼 누군가 곁에 있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고, 누군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면 불호를 기다리는 일만 남는걸까 싶은 근래.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글을 다루는 일에 익숙치 않은 나의 탓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영원히 어떤 마음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울 테지. 냉소적인 포기가 습관이 된 올 여름의 끝, 여전히 찾는 건 활자와 소리구나. 

 

누군가의 호의와 친절을 사기 위해 어떻게든 웃고 무언갈 참아내는 과정 없이 그 자체로도 빛나는 모습과 본연의 꾸밈없는 언어 등으로 동경과 아낌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시기조차 생기지 않아진다. 어차피 그런 빛나는 별까지 될 수 없는 나로써는 차라리 바라지 않고 늘 그렇듯 뒤편에 선 채 찾는 이만 찾는 조용하고 작은 오두막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근래에는 특히나 나와 세계가 다른 듯한 인상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자주 마주했다. 어찌해도 그 단체에 녹아들 수 없는 나와는 참 다르다 싶었고, 그렇기에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고 포기했기에 늘 그렇듯 같은 결론에 닿았다. 어차피 모두 날 찾지 않고, 필요로 하거나 원치 않는다. 별은 별끼리 모이기 마련이구나. 나는 지상의 나무와도 같을 뿐인데. 애초에 나와는 너무 다른 이들이었다.

 

글을 적자고 생각하며 이번 글은 다소 난잡하게 적어야겠다 다짐했었다. 피로감이 동공과 입술에서 가장 티가 나는 사람인지라 흐릿한 시각과 따가운 입술을 머금은 채 굳이 정교하게 정리하고 싶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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