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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h/diary

팔월 이십칠일

긴 숨의 궤적을 몰아쉬며 매일 검푸른 밤을 보낸다.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를 서툴고 더딘 걸음의 종착지는 사실 첫 지점 그대로였다. 나는 여전히 밖과 안에서 소리만을 찾고, 무형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고, 감싸안기 위해 수많은 나를 버린다. 인간의 손은 고작 두 개 뿐이고, 품은 좁기에 매번 심장 언저리는 아파진다. 우리는 단지 계속 양 옆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라는 누군가의 담론처럼 내가 원하는, 아니 어쩌면 원하지 않는 모습조차 첫 장소 그대로에 있었다. 그리운 것은 장소가 아닌 시간, 움직임은 모두가 아닌 내 스스로. 

 

위 혹은 아래라 칭하는 여타의 방향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비하고, 낭비하던 것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과 싫어하는 내 모습은 항상 균형감 따위 없이 곡선으로 유지된다. 묵묵함이 능숙함의 시작이겠지 싶어 걸어온 날들은 언제나 숫자에 지고 만다. 다양한 색채로 이루어진 것들에 비해 나는 여전히 왜소하고 비루하다. 어제는 종로에서 세상과 더 멀어진 나를 발견하고 그 값을 지불했다. 갈무리할 수 없는 책의 마지막 단어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멸감은 매번 나를 지치게 한다. 나는 갖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가지는 것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해왔다. 마냥 잔혹한 방법은 아니지만 선역의 일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음율을 부르고, 모든 순간을 정제하고 다듬어 갈무리한다. 다만 농도와 어법이 달라질 내가 원하던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외로움을 어쩌면 다소 좋아한다. 그래서, 여전히 아무도 모를 법한 곳을 찾아 음악을 듣는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만드는 보다 음악을 듣는 일이 좋다. 

 

며칠 전엔 갑작스레 춘천에 다녀왔다. 알고 지낸 지 길지 않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일은 두 번째였다. 처음 가본 동아리방이라는 곳은 신기하고 부러웠고, 이제 곧 사라질 아름다운 공간에서 듣는 좋은 LP는 왠지 모르게 오래 전 눈물과 웃음이 떠올랐다. 너는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을까, 음악을 아직 좋아할까. 음악을 아직 여전히 찾고 지낼까. 

 

강의 바람이 저마다 짙어지는 구월이다. 언제나 그랬듯 스스로를 고립하게 만드는 모든 일은 씁쓸하지만 나를 되짚고 곱씹을 수 있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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