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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h/diary

팔월 이십팔일

짓는 일보다 두려운 일들은 잇는 일이다. 사람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어떤 규칙이 존재하는 순간 나와는 먼 일이었을수도 있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것보다 두려운 일은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순간 사실 다수의 관념이 무의미해지기에. 비교하지 않게 되면 의미를 지운 채 버리게 되니까. 텅 비어가는 내 방과 작업실처럼, 내 마음의 무게처럼. 

 

나는 어쩌면 더 이상 이렇게 음악을 하고 싶지 않을수도 있겠다 싶다. 음악으로 인해 흐트러진 것들이 더 많아진 순간부터 나는 내 이름을 지우고 아무도 모르도록 조용한 소도시에 떠나 마치 지난 15년의 궤적이 거짓말처럼 잊혀지도록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를 어떤 곳에서 흔적 없이 지워내는 일은 무엇보다 잘 하는 사람이니 걱정은 없다. 단지 너무도 멋진 음악을 짓던, 지금은 그만두고 연락이 닿지 않는 그 친구처럼 한국에서 살아가며 자의적으로 음악을 전혀 듣지 않게 될까 조금 두려울 뿐이다. 정말 나도 그럴것만 같아서, 근래의 나는 그럴 것만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내겐 이제 무언가를 짓는 친구가 많이 남지 않았다. 

 

근래 몇 번 자의적으로, 혹은 부탁을 받아 오랜만에 공연 사진 촬영을 맡았다. 15년도 경에는 매번 미러리스를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있었다만, 사실 이렇게 갑작스레 다시 시작할줄은 몰랐다. 누군가의 무대 위 모습을 담아주는 일은 이런 기분이었지. 관객들 중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공간에서의 촬영은 꽤나 쾌적하다. 제법 크기가 있는 렌즈 덕분인지, 아니면 다소 정중한 어투라서인지는 모르지만 조심스레 시야를 가리지 않는 선에서 상대방의 가장 좋은 모습을 담기 위해 다른 시야를 찾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문득 슬퍼지는 이유는 스스로도 가장 잘 알고 있다. 

 

수요일은 1년만에 솔로 셋 공연이 있다. 내가 올라도 될지 모르겠는 무게의 공연. 아니, 사실 모든 공연이 내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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