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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h/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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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오일 다시금 빵 오디션을 보았다. 15년도에 체온으로 오디션을 본 이후, 약 8년만에 마주한 빵의 무대를 바라보자니 묘한 익숙함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꼈다. 분명 그 때와 지금의 내가 이만큼 달라진거겠지싶은 마음으로 서류를 적고, 순서가 되어 두 곡을 마치고 내려왔다.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지인 덕분에 보다 좋은 분위기로 쾌적하게 오디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목 끝과 마음이 쓰렸다. 나는 여전히 이 길목에 갇혀 있구나, 흐르지 못한 채 퇴적되어가며 돌아갈 곳 없이 이 곳만을 회전하고 있구나. 익숙한 이름들이 많아진 빵 일정표를 받고 나서 가만히 고민해보니 지금 내야 할 일들이 눈 앞에 보였다.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담고 지낸 근래, 나는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게 아닐까...
시월 십팔일 삶을 구성하는 너무나도 존경해 마지 않는 피아니스트 네 명 중 두 명이 떠나갔다. 나는 결국 그 둘의 공연을 직접 단 한번도 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게 더 오늘의 내겐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찾는 것은 일종의 존경의 파편일테고, 나는 내가 생각하며 지낸 공상의 그들을 마주하는 것이 지금에선 더욱 긍정적일 뿐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고 하여 부정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공연을 잘 찾지 않았다. 누군가를 구태여 만나지 않는다. 나는 정을 붙이는 일을 미워하고 두려워한다. 장소와 시간의 남는 모든 기억은 정이라 말하지. 사실 언제부턴가 더는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고, 새로운 공간을 찾고 싶지도 않다. 새로운 즐거움이란건 무슨 색채일까,..
팔월 삼십일일 사실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말 못했지만 공연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나를 이야기 해 주는 일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왜 자꾸 혼자 있을 때 마다 이렇게나 우는지 모르겠다. 내게 꿈이었던 사람과 같이 공연했던 이유일까, 노래를 할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 아직까지 이렇게 살며 음악 해나가도 괜찮다고 문득 소심하게 느꼈기 때문일까. 그런 이유일까.
팔월 이십구일 잠을 3시간 이상 못 자네. 와인 마시고 싶다.
팔월 이십팔일 짓는 일보다 두려운 일들은 잇는 일이다. 사람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어떤 규칙이 존재하는 순간 나와는 먼 일이었을수도 있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것보다 두려운 일은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순간 사실 다수의 관념이 무의미해지기에. 비교하지 않게 되면 의미를 지운 채 버리게 되니까. 텅 비어가는 내 방과 작업실처럼, 내 마음의 무게처럼. 나는 어쩌면 더 이상 이렇게 음악을 하고 싶지 않을수도 있겠다 싶다. 음악으로 인해 흐트러진 것들이 더 많아진 순간부터 나는 내 이름을 지우고 아무도 모르도록 조용한 소도시에 떠나 마치 지난 15년의 궤적이 거짓말처럼 잊혀지도록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를 어떤 곳에서 흔적 없이 지워내는 일은 무엇보다 잘 하는 사람이니 걱정은 없다...
팔월 이십칠일 긴 숨의 궤적을 몰아쉬며 매일 검푸른 밤을 보낸다.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를 서툴고 더딘 걸음의 종착지는 사실 첫 지점 그대로였다. 나는 여전히 밖과 안에서 소리만을 찾고, 무형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고, 감싸안기 위해 수많은 나를 버린다. 인간의 손은 고작 두 개 뿐이고, 품은 좁기에 매번 심장 언저리는 아파진다. 우리는 단지 계속 양 옆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라는 누군가의 담론처럼 내가 원하는, 아니 어쩌면 원하지 않는 모습조차 첫 장소 그대로에 있었다. 그리운 것은 장소가 아닌 시간, 움직임은 모두가 아닌 내 스스로. 위 혹은 아래라 칭하는 여타의 방향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비하고, 낭비하던 것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과 싫어하는 내 모습은 항상 균형감 따위 없이 곡선으로 유지된다. 묵묵함이 능숙..
팔월 오일 귀를 기울이면, 왜 이제서야 보았을까. 지브리 작품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마음에 드네. 보는 내내 모든 글과 장면을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기억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엘르가든을 본 날, 십대와 이십대를 담은.
팔월 삼일 나는 왜 이리도, 그리도 소중한 것들을 지금 오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