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uth/diary

(185)
팔월 이일 왜 발매해도 별로 안 기쁘지
칠월 십칠일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는 서로를 명확히 당연스레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쩔 수 밖에 없고, 가혹함은 언제나 한 쪽에게 더욱이 치닿는다. 종종 어떤 결정은 모두가 의미를 알 수는 없겠지. 그럼에도 구김살이 많은 건 언제나 속상하다. 나는 왜 직설적임을 두려워할까, 가끔은 그게 가장 먼저여야 하는 세계인데. 행복이라는 단어는 마주할 때 마다 눈물이 난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다만 언제일지 모를 포근한 겨울을 향해 매일 음악을 짓고 들으며 글을 적고 사진을 남긴다. 꼭 긴 글이 아니더라도 우린 알 수 있으니까. 종종 짧은 문장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내게 그토록 음악과도 같은 존재이다. 다녀올게, 너도 잘 다녀와.
유월 이십일일 며칠 전, 세계를 스스로 거부한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공교롭게도 나는 오래 전 부터 알아온 다른 친구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열 아홉이 지나 막힘없이 어디에서나 술을 마실 수 있던 그 때, 그 친구를 처음 알았다. 그럴듯한 유명 예술 대학 어디에도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던 나는 반쯤 포기한 채 혼자서 다시금 홀로 방에서 음악을 짓고 있었고, 그러던 중 주변의 소식으로 어쩌다보니 충정로에 위치한 학위 인정 전문 학교를 알게 되었다. 정시가 남아있었지만 언어를 제외한 수능 점수와 내신, 출석 상황이 좋지 않던 나는 기대를 않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도 배울 것이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학위 등 타이틀에 더욱 예민하던 시기였고, 당연히 학위 인정 학교는 좋은 눈길을 받을 ..
유월 십일일 미루던 작업실 청소를 마쳤다. 무거운 마음으로 아끼던 악기들을 판매했고, 그 외에도 당장 사용할 장비가 아니면 전부 정리했다. 피부가 잘 나아지지 않는다. 예전만치 상처 복구가 빠르지 않다는 점이 나이를 다소 체감하게 한다. 면도를 더 신경써서 해야 하는구나. 아이맥이 상태가 좋지 않다. 맥북으로 작업을 진행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다. 백업을 진행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전부 재설치를 해야할까. 눈이 나으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아프다. 나는 죄를 짓고 사는구나.
오월 십팔일 언젠가부터 광화문은 내게 숫자 섞인 작별의 섬이 되었네. 교보문고에서 폴더폰을 붙잡고 멍하니 서 있다 말 없이 1711을 타고 돌아간 날, 10대의 반을 보낸 볼펜 향기 섞인 이와 더는 연락을 하지 말자며 청계천에서 씁쓸히 웃고 7016을 타던 날, 전화를 받고 급히 광나루로 가서 100번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주책맞게 정작 나는 왜 우는지도 모른채 울던 날, 그 밖에도 차마 적지 않는 수 많은 작별. 종종 다른 이들에게는 풍화의 전날이라 기억에 남는다 말하지만 나는 네가 떠난 날로 오늘을 기억하네. 오늘 서울은 멍청할 정도로 흐릿하게 비가 왔다. 오늘은 풍화를 들었다. 내가 가장 아플 때 만든 그 앨범은 그래서 자주 듣지 못한다. 수 많은 환청과 환각, 그로인한 혼잣말이 가득 담긴 아프지만 고마운 앨..
사월 칠일 작업실의 세팅을 바꾸었다.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구매했고, 메인 서밍 믹서를 해체했다. 몇 페달을 판매한 후 보드 케이블 라우팅을 다시 잡고, 사용하지 않지만 모으던 플러그인과 샘플을 망설임없이 삭제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프로젝트는 전부 압축하여 드라이브에 아카이브했고, 단순히 내가 만든 소리와 당장 작업해야 할 프로젝트만 남겨두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렸고, 창고에 넣어 둘 것은 그러모아 정리했다. 다시금 이 때가 왔구나 싶다. 항상 나의 신변을 정리하는 이 때, 나는 나 스스로 혹은 누군가와 약속을 한다. 다시 해 보자. 무서워하지 마, 네가 쌓아온 시간과 과정을 믿어. 너는 이 과정을 겪을 수록 새로운 너를 짓는거야. 마리아나 해구에 대해 곡을 쓴 날을 문득 생각한다. 숫자 다섯개와 알파벳 하나로..
사월 오일 그가 연주하는 건반의 음표 사이 간격이 좋았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건반을 들었지만, 그의 왼손 간격과 오른손의 흐름은 다른 누군가에게서도 느껴볼 수 없던 치밀한 거리감이었다. 관계에서도 절묘한 거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선 그 곳에서 안정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만큼 흐릿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자주 그의 건반을 찾았다. 짓누르듯 비가 오면 THREE 앨범을 찾았고, 날이 괴롭게 평이하면 Async를 찾고, 다소 흐린 어두운 밤엔 Playing The Piano 앨범과 12를 찾았다. 다소 어려워 무언가도 닿지 못할 때는 Coda와 Async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소리를 짓는 일에 비참한 환멸이 문득 다가올 땐 Insen과 Cendre, Plankton을 들었다. 예전 작업실에서 MCML를 듣..
삼월 이십사일 내가 이 곳에서 사라지더라도 그 어떤 장례식엔 오지 말아요. 이 짧은 당부의 문장을 나를 아는 이들이 읽을 수 있는 곳에 적다보면 값싼 조소를 머금게 된다. 분명 유서 비슷한 틀에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말을 수없이 적어도 자기 마음대로 할 걸 알기에, 아직 차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서까지 미리 당부를 하고 있는 사실이 참 우습지 않니. 내가 사라진 후에도 분명 자신 제멋대로일 사람 탓에 이런 글을 적는다는게. 나는 내가 아는 이들을 그 따위 장소에 모아두고 혹여 있을 슬픔을 공유하게 두고 싶지 않다. 나의 관한 슬픔과 그리움은 부디 조용한 곳에서 홀로 앓아주세요. 조용히 차라리 내가 지은 소리들을 들어주세요. 이것도 역마살이라면 역마살일까. 지속과 안정의 순간을 문득 두려워하며 피하고 그 때 스며드는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