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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h/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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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십칠일 내가 못 해내는 것들을 잘 해내는 걸 보며 부러워하는 것과, 내가 잘 해내는 것들을 더 잘 해내는 걸 보며 부러워하는 것. 혹은 내가 잘 해내던 것들을 그보다 덜 해내지만 축복받는 것. 세 가지 중 어떤 모습이 내 오롯 부러움의 퇴적물일까. 나는 언제나 뒤꽁무니에서 멍하니 잃어온 걸 바라보며 씁쓸히 웃는 사람. 따스한 축사와는 거리가 먼, 평안과는 그보다 두 걸음 먼, 외려 바람 부는 고원을 찾고 싶은 마음. 다들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고 모아 취미를 가지며 음악 작업까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걸까. 내가 너무 게으른 탓일까, 내가 무언가 모자란걸까.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와 트위터 타임라인을 볼 때 마다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은 불어나지만 정작 나는 좁은 매장에서 좋아하는 앨범을 종일 틀고 유리와 바닥..
삼월 구일 스무살 언저리부터 주변과 대화를 나눌 때 반쯤 우스갯소리로 생일은 시간을 잘 지내고 있는지 과거와 미래의 삶이 내게 조소 섞어 묻는 것 같아서 썩 유쾌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릴 적 부터 선물이라는 걸 받을 때 마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무게의 생색과 선물을 받은 대신 내가 해내야 할 무언가를 동시에 듣고, 내가 혹시라도 가지고 싶은게 있다면 어떤 이유로 가지고 싶은지 문서로 설명해야하는 상황을 자주 겪은 나는 보답이라는 말의 무게와 몫이라는 단어를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저변에 둔 채 탄생일에 대한 유쾌한 기억을 단 하나라도 만들지 않기 위해 내 주변에서 숫자를 지웠다. 특정 날짜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우는 방법은 제법이나 쉽다. 모든 곳에서 눈에 닿지 않게 내리고, 내가 구..
이월 십일 늘 그렇듯 순서의 순환은 중요치 않으며, 어쩌면 그보다 나열과 선택에 가깝다. 총괄적 미학은 극히 미세한 일부를 소중히 다룰때 누구도 모르게 슬쩍 생성될테고, 오히려 전제를 두어야 하는 곳은 다르다. 둘은 나뉘어져있지만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고, 교집합은 내가 짓는 것이 아니다. 중첩되는 모든 둔탁한 소리를 최대한 섬세하게 배치하고, 들리지 않는 것일까 싶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게 맞다. 나의 작법 자체에 대해서 스스로가 왜인지 잊고 있던 것들이 많네. 다시 생각하자, 잊지 말자. 나는 세계에서 나만이 지을 수 있는 소리를 다룰 줄 안다.
이월 오일 구태여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온연한 내 소리와 공연을 닿게 할 날을 만들고 싶다. 나는 이 모든 짓는 과정을 그만두지 않을 이유가 언제부턴가 단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놓지 않고 울음 누르며 묵묵히 걷는게 정말 미련한 내 방법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담은 솔직한 연주와 노래를 했던가 고민해보면 주저없이 니어의 여름 공연이네. 그 이전을 찾자면 체온의 빵 공연이다. 그 시간의 과정, 소중함이란 단어를 알게 한 수 많은 순간을 잊지 않고 지내며 놓지 않는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타투처럼 마음에 깊이 남는 법이네. 페달을 옮기는 카트, 고장난 벨트, 드림캐쳐, 이 모든 사소한 것들이 문득 생각날 때면 가사를 적는다. 울지 말자. 울지 말아.
이월 사일 아직 무엇도 확실치 아닌데 왜 아침부터 곡을 듣고 우는지 모르겠다. 미움보다 더 지독한게 애정이에요.
일월 십일일 원체도 없던 주변이 사라져가는 요즈음, 악기와 장비들 및 프로그램은 여전히 소중한 것들이네.
일월 사일 술도 잘 안 마시는, 이젠 예전에 비해 못 마시게 된 친구가 몇 달만에 전화를 걸었다. 낡은 이어폰이라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아 외부 소음이 반 이상인 전화를 몸서리치게 싫어하지만 이 친구의 전화는 받게 된다. 받는 편이다, 아니 받는다가 맞는 말이다. 나 너무 힘들어, 힘들어서 소주 두 병을 내리 마셨어. 너 어디야, 집 앞 국밥집에서 먹었어. 너 혼자야? 왜 혼자 그렇게 마셨어, 퇴근 언제 했어? 사는게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모르겠어. 너 얼마나 빨리 마신거야, 안 좋은 일 있던거야? 있지, 웃긴 이야기 해줄까? 나 12월 31일 23:50에 이빨이 깨졌어. 너 당뇨 때문이야? 너 뭐 챙겨 먹고 일하는거지? 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땅콩뿐이라 좋아하지도 않는데 먹다 이빨이 깨졌어. 바보같게..
십이월 삼십일 나 이따위의 서른을 바라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