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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도. 새벽 두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 되었을 때 목이 말랐다. 그렇지만 투명한 생수는 마시고 싶지 않았다. 향이 진한 메밀차나 녹차를 마시고 싶었지만 통장 잔고는 부족했고, 현금은 없었다. (사실 배도 고팠었지만 소화가 되지 않을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 집은 추운 편이다. 옷을 더 입고, 챙길 걸 챙겨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갔다. 차라리 차가운 물을 마시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차가운 얼음물을 한잔 마시고, 다른 컵에 따뜻한 물을 데워 믹스커피에서 커피만 덜어내 커피를 탔다. 차분해져 2층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내려앉는 소리.정말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눈이 말을 걸었다. 소복소복, 이런 흔한 표현이 아니라. 말 없는 소리로.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
이번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혹은 내가 어쩌다 많이 보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이번 겨울의 눈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모순적으로 나는 기대를 하지 않고 현관을 열었다. 그리고 왜 눈이 말을 걸었는지 알았다. 올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었다. 뭉툭하게 가라앉는 백색 언어. 하얀 꽃잎.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었다. 난 평소에 눈을 좋아하지만 이토록 뜨겁게 내리는 눈을 본 기억이 오랜만이었다. 아니, 감히 처음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쏟아져내리는 눈 속에서 나는 말을 아꼈다. 최대한 그 사소한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침묵하고 싶던 내게 이유가 생겼기 때문에. 그 핑계에 기대고 싶었기 때문일까. 여하튼, 난 말없이 입을 닫았다. 30분 정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열심히도 내리는 눈을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 어릴 적 나는 눈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난 저렇게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에 눈이 아닌 비가 되기로 했었고, 비가 그렇듯 그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쌓이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흘러가 하수구에 흘러가듯이. 태양에 지듯이, 난 나를 흘려보내고 소비가 아닌 낭비를 했다. 그렇지만 난 저렇게 아름답지 못했다. 난 저렇게, 아름답지 못했다. 눈은 멈추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며 자신의 갈 길을 찾았다. 바람은 더더욱 세어지고, 우리 집 마당의 목련은 하얗게 옷을 입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닫았다. 괜시리 슬픔이 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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