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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파랑

eeajik 2017. 12. 15. 14:51

밤마다 우울해지면 무언가를 탐하고 싶어진다. 음식이던, 연기던, 술이던, 대화던. 확실한건 소화가 정말 ‘절대’ 되지 않는 기분이다. 음식은 먹고 싶지만 정작 먹으면 자꾸 속에서는 안된다며 거부한다. 내가 좋아했지만 이제는 못 먹는 음식이 많아진다. 국물이 많은 음식은 먹지 못한다. 걸쭉한 음식들 (순대국밥, 감자탕, 해장국 등 모든 해장국 종류. 어지러운데 해장도 못하다니) 치킨이나 튀김류같이 잘 부서지고 입자가 고운 음식, 유제품 (심지어 라떼까지), 밀가루 음식. 면류, 회 등.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쌀도 소화조차 힘들다. 더 말하자니 비참하다. 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내게 포만감과 먹고 싶던 음식을 먹은 후의 감정은 언제부턴가 불쾌하고 부끄러운 감정만 남게 된 것 같다. 음식을 먹을 때 뱉어내기 쉬운 음식을 찾고 꾸역꾸역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가 안타깝다고 어떻게든 소화시켜보라고 말했다, 내가 소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면 된다고. 가능은 하겠지만, 너무 힘들다. 나는 솔직히 포기했다. 낫지 않아도 된다. 맛있게 먹는 그 행위 자체라도 할 수 있는 게 행복하다고 자위한다. 먹질 못하는거보다 맛있게 먹고. 그 이후는 생략.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행복이다. 그렇지만 대개 행복이 그러한 것인지는 몰라도 자기합리화를 해낸 이런 일들이 덮어씌워지고 또 덮어씌워지면 언젠가는 초라한 내 본연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던 내 눈에 들어오고, 다시 비참해지는 나는 나를 보고 비웃다 지쳐서 한없이 파랗게 우울해진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몇 분 동안이나 헛구역질을 하고 비워낸 후 나오면서 붙어있는 거울을 보면 추레하다. 까만 눈 주변. 충혈된 눈. 빨간 입술. 이 일 뿐만이 아닐 것이란 건 안다. 분명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있을 테지. 만족스럽게 작업을 끝낸 앨범에 넣을 곡과 너무나도 비슷한 음악을 찾게 되어버려서 다시 어느 정도 재작업을 해야하고, 나는 정말 별로인 사람이 엄청난 극찬을 들고 칭찬을 받아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자괴감에 파묻히고,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데도 정체기가 다시 돌아왔는지 몸무게의 변화와 외형의 변화는 없다. 거울을 볼 때 마다, 길을 걷다가도 못난 내 얼굴을 자책하고, 하루에서 수백, 수천번씩 바뀌는 내 변덕스러운 기분이 맞는건지 틀린건지 몰라 시비를 헤매고. 아직 너무 조그맣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거짓말조차 못하는 내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서 집 밖에 나가기도 부끄럽다. 작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헛소리만 하고 있는 내 모습과 낭비되는 시간, 가끔 맞부딪히는 차가운 지금의 현실과 형편없는 내 집중력. 끊어야겠다고 몇번이나 말하지만 절대 끊지 못하는 담배, 건강 이전에 돈 문제라서 줄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줄이지 못하는 혼자 마시는 술. 형편없다. 나는. 달라지겠다고 말하는데 그것마저 하지 못하는 비린내나는 썩은 시체다. 모든 감정들이 고무찰흙처럼 놓여있다. 내 안의 책상에. 까아만 새벽은 먹지와도 같다. 나는 그 모든 감정과 기억과 생각을 이 새벽에 아무렇게나 뭉쳐 던져버린다. 그렇게 되면 까아맣게 아름답던 새벽은 무차별적으로 던져놓은 내 손때묻은 찰흙들 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더러운 형태만 남는다. 아름답던 새벽은 고무찰흙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우울함을 그대로 두고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예전엔 마음이 외려 편했다. 다 이겨내고 다 치워버린 줄 알고.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내 진실된 외로움의 모습을 잠에 잡아먹히게 둔 채 외면하고, 내 진실이 도망가는 모습을 눈을 가린채 보지 않고. 진실된 내가 도망가서 남아버린 거짓된 나를 보며 이겨냈다고 남들에게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뿐이다. 사실은 난 미안해해야한다. 나에게. 보듬어줘야할 아픈 나에게 미안해해야한다. 눈이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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