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하염없이 무너지고 부서진다. 오래 전 같거나 닮은 음악을 듣고 나누며 오래 된 영화와 만화책을 보며, 말도 안 되어 보이는 미래의 이야기들을 마치 눈 앞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 처럼 말했던 주변 중 내게 남은 이는 누가 있을까. 청승맞게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만 감아도 선명한 표정과 말투는 종종 일상에서 문득 떠올라 눈물이 올라오게 만든다. 나는 이제 어떤 꿈을 그리기보다는 꾸었던 꿈의 결론을 만들기 위해 매일의 나의 일부를 깎아가며 살아가는 기분이다. 이루어지지 않을거야, 라는 냉소는 회피에 가까운 일종의 자기최면. 그럼에도 나는 계속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하는 맡은 역할이 있고, 내 스스로의 마음 속 떠오르는 소리들이 있다. 고독해도 짓는 일 밖엔 할 수 없다. 출근해서 억지로 웃으며 잘 하지도 못하는 매장 매니지먼트를 하고, 판매를 하고, 싫어하는 담배 냄새를 몸에 배인 채 퇴근하고, 지친 채 작업실에서 소리를 다듬고.
매일 괴롭다. 조금 더 잘 하고 싶다. 조금 더 많이 짓고, 유려하게 정돈하고, 완벽하게 노래하고 연주하고 싶다. 솔로 공연을 최소한의 구성으로 진행하게 된 이유도 다름이 아닌 어차피 다 표현할 수 없다면 가장 최소한의 무대라도 내가 원하는, 소화 가능한 정도의 구성으로 들려주고 싶었다. 다만 여태 부족하다. 여전히 목소리는 종종 길을 잃고, 연주는 마음을 잃는다. 절대 나이를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문득 체감하게 만드는 주변의 일들은 매일 잠을 못 자게 만들고 길을 걷다 문득 팔을 경련하게 만든다. 근래 근육이 이상하다. 가만 있어도 가끔 팔과 목이 움찔한다. 어금니가 아프고, 잠이 매일 모자라다. 홀로 산으로 떠나고 싶다.
다른 무언가보다 음악만을 하고 싶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절박하다. 근무 내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 웃음을 짓고 가끔은 언행에 상처받는 시간보다 조용히 방에서 혼자 좋아하는 소리를 모아 짓고 나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다음 달의 금전 걱정을 하고 싶지 않다. 잊혀질까 두려워하고싶지 않다. 가끔은 저녁 일찍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돌아가 일찍 잠들어보고 싶다. 오후 열한시 삼십분 경 오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간지 몇 년이 지났다.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은 날을 꼽는 것이 더 쉽다. 고작 한 해의 두어 번 뿐이었으니까.
지금이 말하는 행복의 평안, 혹은 위안. 어떤 것도 온연히 찾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당장 내일과 다음달의 내게 미루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낮 시간엔 무언가 먹지 않고 돈을 모아 필요한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고 외주와 강의, 레슨에 필요한 무언가를 모은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두 시간만이라도 업라이트 건반이 있는 방에 틀어박혀 연주하고 싶다. 점심이란 걸 꾸준히 먹지 않은 것이 몇 년이 지났다. 오후 열한시 전 까지는 약속이 없는 날이라면 초콜릿 종류 불문 2종, 콜라 500ml, 차 300ml와 에너지 드링크 355ml 두어 캔.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건 내가 짓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그래도 이루고 싶은, 오르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에 오늘의 나와 어제, 내일의 나를 포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종종 다가오는 공허감과 차가운 섬뜩함은 여전히 밤잠 이루다 소리치며 앓고 깨게 만든다. 이름이란건 참 두렵구나. 누군가 지속적으로 나를 알고 찾는다면 달라질까, 그것 또한 마뜩찮다. 단지 내 소리가 모자랄 탓이라 생각하고 그만 생각을 멈춘다. 마저 근무 해야겠다.
이름을 지우고 소리를 지을까 매일 고민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