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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h/diary

구월 이십구일

적막한 밤이 삶의 연장을 억지로나마 다잡아주는 계절이다. 누군가의 글로 마음을 다치고, 누군가의 말로 마음을 여민다. 홀로서 무언가를 지으며 모든 말을 삼키어내는 내 고집이자 습관은 여전히 지금도 변치 않았지만, 몇 곳에서 보여지는 모습들로 누군가는 내 주변의 유대감 혹은 관계를 오해하고 만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이 매일을 지내며 누군가의 곁에 있길 두려워하고 걱정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스스로 누군가에게 쉽사리 곁을 내주지 못하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되니 참 우스운 일이네. 특히나 여러 일이 있던 이번 여름, 나는 더욱더 혼자가 아닌 집단과는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고, 불특정다수가 보는 곳에 무언가 적는 일에선 진담의 비중을 덜어냈다. 누군가에겐 다소 자랑으로 비쳐질 수 있는 글을 적지 않고, 누군가에게 칼을 겨누는 듯한 말을 자제하며, 누군가의 동정을 사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진 않은지 적어도 몇 번은 고민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내 성향이 속상하진 않다. 그저 다소 냉소적이고, 감정을 소모하는 일에 지쳐 겉으로 보여지기에 차분해지는 모습이 조소가 날 뿐이다.

 

홀로라는 말의 어원은 홀이다. 홀/짝 할 때의 그 홀. 곁이 없다는 뜻의 순우리말 어근. 생각해보니 영어로써의 홀도 그렇고 단어가 주는 영향 탓인지 다소 쓸쓸하고 얇은 느낌을 주는 듯 한다. 공연장 뒤편에 서서 앞을 바라보는 사람을 닮은 모습 같기도 하네. 근래에는 더욱 곁에 누군가 있을 때 문득 씁쓸해지고 마치 기흉처럼 폐 끝자락이 아파와 슬쩍 자리를 뜨게 된다.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될테니까, 라는 오래 전 부터 지녀온 기본적인 자조가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인지. 어떤 승려의 조언처럼 누군가 곁에 있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고, 누군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면 불호를 기다리는 일만 남는걸까 싶은 근래.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글을 다루는 일에 익숙치 않은 나의 탓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영원히 어떤 마음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울 테지. 냉소적인 포기가 습관이 된 올 여름의 끝, 여전히 찾는 건 활자와 소리구나. 

 

누군가의 호의와 친절을 사기 위해 어떻게든 웃고 무언갈 참아내는 과정 없이 그 자체로도 빛나는 모습과 본연의 꾸밈없는 언어 등으로 동경과 아낌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시기조차 생기지 않아진다. 어차피 그런 빛나는 별까지 될 수 없는 나로써는 차라리 바라지 않고 늘 그렇듯 뒤편에 선 채 찾는 이만 찾는 조용하고 작은 오두막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근래에는 특히나 나와 세계가 다른 듯한 인상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자주 마주했다. 어찌해도 그 단체에 녹아들 수 없는 나와는 참 다르다 싶었고, 그렇기에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고 포기했기에 늘 그렇듯 같은 결론에 닿았다. 어차피 모두 날 찾지 않고, 필요로 하거나 원치 않는다. 별은 별끼리 모이기 마련이구나. 나는 지상의 나무와도 같을 뿐인데. 애초에 나와는 너무 다른 이들이었다.

 

글을 적자고 생각하며 이번 글은 다소 난잡하게 적어야겠다 다짐했었다. 피로감이 동공과 입술에서 가장 티가 나는 사람인지라 흐릿한 시각과 따가운 입술을 머금은 채 굳이 정교하게 정리하고 싶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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