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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h/diary

시월 팔일

먼저 잘라내어 잃고 애써 잊으려 노력한다, 가능한 곁만을 지속한다. 단 두 가지의 선택폭으로만 지내온 편이다. 이 또한 균일하지 않은 유년 탓에 뒤틀린 결핍의 일부일까. 작업 때 약간의 문제라도 있는 소스라면 바로 다시 녹음하는 습관도 같은 사유가 있을까. 언제나 중간 지점을 찾는 내가 유일하게 극단적인 부분이구나 싶다. 근래에는 어쩌면 내가 어떤 결핍을 나 스스로도 모른 채, 혹은 모르는 척 지내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그렇게나 곁을 두지 않고 밀어내면서, 정작 몸이 지치고 마음이 닳아 가끔 술에 취하면 울며 이름을 부르는 내 모습을 나는 기억하니까. 차라리 취중의 기억이 나지 않으면 좋을텐데, 이상한 습관이지만 여전히 취기 섞인 기억을 나는 쉽게 잊지 못한다. 매일 손이 차가워지고, 매일 눈 밑이 파르르 떨리며 입술이 상한다. 누구의 탓도 아닌 걸 나도 알고 있다. 

 

몸무게가 조금 늘었다. 평소처럼 53kg 언저리겠거니 싶었다만, 오늘 아침 확인해보니 58kg. 감사하게도 선물받은 디저트 외엔 무언가 과식한 기억은 많지 않다만, 확실히 근래 술자리가 조금 많이 있던 탓일까. 일마레와 클럽빵 공연 이후 오랜만에 뒷풀이도 조금 오래 있었고, 주량에도 맞지 않게 술을 많이 마시긴 했다. 좋은 기억이지만 왜인지 항상 돌아오는 택시 안은 서늘하고 쓸쓸하던 기억만 남아있다. 돌아가는 곳이 정말 돌아갈 곳이 아니라는 마음 탓인지, 이렇게 연소된 시간이 아쉬운 탓인지. 매일 그렇게 흐르는 시간이 아쉽다. 지나온 시간이 슬프고, 내일이 무섭다. 살아감에 있어 무차별적으로 기댈 곳을 찾는 이들은 그래서 그러는걸까.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없어진 요즘이다. 

 

누군가를 배웅하는 과정은 매번 마음이 이상하다. 생각해보니 게르다에서도 연주하며 가장 집중할 수 있고 좋아했던 곡은 Travel well, my dear 이었네. 나는 어쩌면 섬이 되고 싶은 것도 맞지만, 그 섬에 등대같은 무언가가 되고 싶은 걸까. 누군가가 들렀다 나설 때 길을 짚어줄 수 있는, 그런 낡고 작지만 온연한 등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스스로 체감하기에 돌이킬 수 없고 낡은, 무의미한 사람이기에, 누군가와 엮일 때 무언가를 줄 수 없는 것일터라 그러한 엮임이 없도록 정리하고픈게 아닐까 싶은. 

 

부탁으로 다시 복귀했던 일터를 정리한다. 기관지와 폐가 어릴 적 부터 굉장히 안 좋았던 편이지만 혼자 일할 수 있고 익숙한 일이기에 지속했어도 더 이상 목소리와 호흡을 망가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자꾸만 하대받는 상황과 부정적인 언행만을 가진 사람 밑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 같이 일하시던 새로 오신 분도 여러 이유로 정리를 진행하신다는데, 여기도 어쩌면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겠구나.

 

매일이 허공처럼 슬프다. 누군가 앞에서는 웃음만을 지녀야하기에 웃지만, 혼자 있을 때나 누군가 앞에서는 끝도 없이 슬퍼진다.

 

가을이다. 항상 이맘때는 마음이 미어지는 북풍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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