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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h/diary

시월 이십오일

식도염과 후두염, 심한 역류성 식도염과 신경성 위염, 위경련. 종종 찾아오는 기흉. 오늘 병원에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눈 꼭 감고 결제하여 많은 약과 긴 수액 주사를 맞았다. 몸이 버틸 수 없게 아프다고 자각하며 산 적이 많지 않았는데, 오늘 눈을 뜨고 문득 [이제는 이렇게 나를 아프게 놓아두면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매번 나는 미래에 대한 계획 준비 단계에 내 건강이 가장 뒤에 있었고, 당장의 어떤 이룸과 성과를 위해서라면 내 건강에 관한 모든 것들을 먼저 포기했었다. 여전히 양쪽 어금니는 비어있고, 이관 개방증은 종종 심하며, 심각한 수전증과 수족냉증은 나 자신도 점차 심하다 자각하고 있다. 누군가 옆에 있던, 않던. 나는 단지 내 건강은 '다른 이가 엮이지 않은 온전히 나의 몫'이며 추후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은 것들에 정을 주지 않는다는 관점 탓인지 나를 깎아내고 갈아내며, 소비하며 공부하느라 나를 챙긴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깊은 이야기, 혹은 사소할 이야기를 앞으로도 나눌 사람이 있다. 감사한 선물과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요리와 선물을 건네고 싶은 사람이 있다. 식사를 하며 나를 찾아주는 사람 또한 있다. 스스로의 고민을 내게 솔직하게 말해주고 온연한 자신을 말해주는 이가 있다. 같이 영화를 보고 싶고, 전시와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좋은 가게를 찾아 같이 술 한 잔 나누며 음식과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줄 사람이 떠오르는 삶이라면, 나는 내 소리와 건강, 몸을 챙겨야 하는 단계를 놓치면 안 된다. 나를 방치하면 안 된다. 

 

오늘 오전 뜬금없게 이동욱씨가 나온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평소 이런 유튜브 등의 가십거리 계열이나 OTT를 보지 않았다만 오래 전 부터 좋아하고 아름답다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잠깐 보다 문득 이동욱씨의 나이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나보다 13살이 많았다. 그럼에도 저렇게 아름답게 피부를 관리하고, 몸을 가꾸는 모습을 보며 어떤 확신도 들었던 듯 하다. 건강한 대화, 젠틀한 예의, 오랜 뒤를 보는 신중한 어법. 나는 고작 서른이고, 내가 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들은 많기에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관리를 해야한다. 담배 가게를 나온 순간부터 나를 다듬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멋진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네. 요즈음은 물을 자주 마셔보려 노력한다. 텀블러에도 가득, 몬스터와 핫식스보다는 최대한 보리차. 술을 마실 때도 내게 잘 맞지 않는 맥주는 최대한 자제하려하고, 소주나 사케를 마신다면 물을 옆에 가져다두고 마신다. 저녁엔 가지고 있던 샘플 앰플들과 여러 화장품으로 얼굴을 다듬고 늦지 않은 시간이라면 저렴한 팩이더라도 꼭 해본다. 나는 저렇게 멋지게 나이들어고 싶어. 그렇다면 나를 더 청결하고 완벽하게, 단정하고 선명하게 그릇을 빚듯이 다루어야 한다. 

 

근래 저녁에 걸을 일이 종종 생긴다. 어쩌면 나는 이 사소한 루틴이 절실히 필요했던 듯 하다. 실제로 강으로 산책을 떠난 것도 제법 오래 전이니까. 물가에 비친 도심의 조명이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찰나의 순간으로 지난 몇 년을 너무 아프게 버티며 꾸역 지내왔다. 침착하고, 진정하자. 나는 단지 걸음과 대화로써도 충분히 차분해지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일종의 침묵과 고요는 상황 판별을 올바르게 하고 나를 만든다. 잊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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