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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이십일

eeajik 2018. 7. 20. 19:55

물론 창작은 다양한 방법론과 개념이 존재하만, 그 중 한 가지로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수(數)의 형(形)을 내 필요로 하여 섞어내 표현하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융화라는 선택적 창작 방법에 대해서 최근 많은 생각을 한다. 유사한 두 가지를 융화시키는 것도 방법의 하나이지만, 상이한 무언가를 모아내는 방법이 내겐 더 매력적이다. 청명한 가을 바다를 그려내고 싶다면, 가을 바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분석해 낸 후 정밀히 표현해내는 방법이 있을 테지. 아니면 가을 바다와 그와 자연히 어우러질 가을 하늘과 초승달을 융화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혹은 본질적으로 부수어 내 보아 가을의 그 서늘함, 그리고 바다의 치밀한 면모와 유연한 물결의 흐름, 예측 불허의 유동성, 그리고 초승달의 곡선, 차가운 은빛, 본디 원 이었던 원형을 아는 이는 느낄 수 있는 상실감 섞인 여분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모든 것과 관련되지 않은 새로운 매개체를 포함해 한 작품에 녹여내는 방법이 나는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의 연관성이 없을수록 말이다. 전혀 다른 그 차이를 이질적으로 느끼게 하되,  '이질감' 마저 잊을 정도로 하나의 완성으로 아름답다 느끼게 표현해내는 일체의 작품. 그런 작품을 살면서 언젠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궁금하다. 나와 이야기를 멈추고 싶지만 말이다. 최근 곡의 시작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곡의 끝은 언뜻 비쳤는데 말이다. 만족스러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짧은 일기와 같은 짧은 소품 만들 수 있었다. 매 때마다 나는 내가 속절없이 멈춰 있다고 생각했고, 시작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우울에 잠겨 있는 무능한 이 라고 조소하며 치부했다. 어쩌면 나는 본질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피어남의 절대적인 시작이 언제인지 규정할 수 있을까. 과연 절대적인 새벽의 시작이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만들어낸 숫자로 규정한 시간이라는 규칙? 떠오름에 따라 시시각각 하는 하늘의 색채? 분명 천연시작은 직선으로 그어내듯 정확하지 않았을 테니, 인간은 일단 규정해 내려 해도 정작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게 아닐까. 모든 건 가질 수 없을 때 더 아름답고, 절대적으로 완벽한 무언가는 규정에 속하지 않은 채 유하게 그 자리에 존재한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그 여유로움과 평안함. 시작과 끝이라는 표현은 그로 인해 내게 더욱이 망연하게 아름다운 단어다. 나도 모르던 채 어느 새 시작되어 있었고 이따금 끝이 보일 때 다시금 떠올리는 처음의 그 곳. 그 때 마다 뿌옇게 빛나 불확한 시작의 순간. 새로운 곡을 그릴 준비가 됐다. 매번 옭아매는 건 나 자신 뿐 이다. 눈을 감고 울기만 할 시간을 멈추자. 이번 마지막 주 부터 다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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