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스무살 언저리부터 주변과 대화를 나눌 때 반쯤 우스갯소리로 생일은 시간을 잘 지내고 있는지 과거와 미래의 삶이 내게 조소 섞어 묻는 것 같아서 썩 유쾌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릴 적 부터 선물이라는 걸 받을 때 마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무게의 생색과 선물을 받은 대신 내가 해내야 할 무언가를 동시에 듣고, 내가 혹시라도 가지고 싶은게 있다면 어떤 이유로 가지고 싶은지 문서로 설명해야하는 상황을 자주 겪은 나는 보답이라는 말의 무게와 몫이라는 단어를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저변에 둔 채 탄생일에 대한 유쾌한 기억을 단 하나라도 만들지 않기 위해 내 주변에서 숫자를 지웠다.
특정 날짜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우는 방법은 제법이나 쉽다. 모든 곳에서 눈에 닿지 않게 내리고, 내가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으면 된다. 나는 누군가의 관심이 크게 닿는 빛나는 사람이 아닌 편이라 그렇게 두면 모두의 기억에서 슬그머니 사라질 수 있다. 종종 스스로 기억해주고 싶다 생각한 이들만 조용히 연락을 준다. 그 방식이 차라리 좋았다. 나는 화려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이목을 끄는 외모와 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 뿐더러 그럴 이유가 많지 않은 사람이니까. 나는 방이 밖보다 어울리는 사람이다. 동그란 받침이 심지어 더 마음에 드네.
학자가 되고 싶었다. 사실 그런 고고한 표현 따위보다, 단순히 다른 걱정 없이 조용한 방 안에서 하고 싶은 공부만을 하고 싶었다. 항상 더 깊이 무언가 무형을 탐구하고 싶었고, 몰두하여 알아가는 기쁨만을 지내고 싶었다. 지금의 역한 내 모습에서 입에 올리기엔 같잖지만 교수로써 누군가를 가르치고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곁에서 되려 배우면서 기뻐하고 싶었다. 깊은 관계를 바라는 것이 아닌, 누군가와 같이 공부하고 싶었다. 나는 늘 그랬듯 혼자서만 공부해왔으니까. 그래서 공부와 함께할 수 있는 것들만 마음을 깊이 두었다. 향기, 책, 음악, 술.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 스스로의 기쁨과 평안을 주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취미들.
이 일을 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나는 생각보다 담배 종류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 베이핑과 달리 몸에 남는 연초들의 냄새는 내 체향을 망칠 뿐더러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어있는 시가와 파이프는 내가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있는 취미가 아니다. 더불어 이제는 사람을 대하는 일을 최소화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보다 조금 어릴 적엔 나를 숙이고 작게 만드는 일에 굉장히 능숙했지만, 어느 정도 자존이 생긴 후 할 말을 하게 된 편인 요즈음 험한 말이 목 끝까지 닿아 이러다간 내가 상해가는게 아닐까 싶다. 더불어, 기관지가 애초에 좋지 않은 나로썬 매 아침마다 기침이 멎지 않는다. 그나마 간과 폐만 멀쩡하던 몸인데 그마저도 사라질까 싶어 기한만 바라보며 참고 지낸다. 여러모로 목이 상하는 일이라니.
어린 시절의 유일한 좋은 기억들을 함께해주신 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고, 모든 유년의 기간을 함께한 고모와 고모부와는 내 손으로 연락을 정리했다. 긍정적인 기억도 종종 있지만 그 시간을 제외한 모든 기억들은 나를 너무나도 지치고 아프게 하고, 그렇기에 내가 보듬을 수 있던 소중한 작은 것들을 놓치더라도 하루빨리 그 시간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종종 받는 피해의식 섞인, 망상 가득 담긴 거친 문자를 볼 때 마다 전부 읽지 않고 지운다. 글자의 벽을 마주하는 순간은 고통스럽다. 함께 시간을 지낸 친구는 다른 일을 위해 떠나가 멀어진지 오래다. 더는 내 유년이 없지, 극도로 과거의 모든 나를 덮기 위해 내 손으로 모든걸 삭제했으면서 이렇게 씁쓸해하는 내 모습이 우습다 못해 역하다. 정신병은 유전인가요? 피해의식과 자괴감에서 오는 눈물 흠뻑 묻은 화살은 나도 모르는 어릴 적 부터 손에 쥐어진 돌잡이인가요? 마음대로 생각하나요, 마음대로 생각할래요.
이럴거면 차라리 귀신이 될래요.
생각해보면 소위 격려라 칭하는 좋은 이야기를 들어본 경험이 정말 적다. 그것마저도 근래에 가깝기에 손에 꼽아 기억할 정도라니. 특히 가족이라 말하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더욱이. 나는 보통 결과 없이 과정만을 반복한다. 꼬리처럼 과정만 길게 남은 채 끝은 토라진 채 토막나있네. 언제나 나는 내 스스로 답을 주고, 보답을 주고, 토닥여주고, 음악을 들으며 아껴온 금전으로 좋아하는 향수와 술을 산다. 옷도 예전만치 즐겁지 않다. 차라리 좋은 신발 하나가 더 마음에 들지만, 신발에 그런 금전을 투자하기에 나는 내게 자신이 없다. 어차피 내가 신으면 그저 그럴텐데. 더 멋진 사람이 가져가는게 차라리 낫다.
어릴 적 어쩌다 기회가 생겨 현재 이름만 대도 아는 유명 프로그램과 음악가의 작편곡을 하는 모 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를 만났었다. 어린 내 눈에도 보이던 마음에도 없이 내뱉는 같잖은 응원을 바탕삼아 자신의 당시 모습과 장비를 자랑하는 듯한 모습이 참 묘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지인에게 그 사람의 호색에 관해 듣는 이야기는 제법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제법 오래 전 결혼까지 한 사람이 반드시 모든 술자리에서 젊은 이성의 옆자리를 고집하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으면 심부름 삼아 밖을 내보낸다는 이야기는 내가 여기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굳게 만든다. 정말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걸까?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 걸까? 그런 일은 음악과는 다른 영역이라 언급하거나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걸까?
나도 음악 좋아하는데. 나 음악 많이 좋아했고, 좋아하고, 좋아할 생각이었는데. 그걸로는 많이 부족한가보다.
나 음악 많이 좋아하는데. 음악 정말 많이 사랑하고, 음악에만 기대어 음악만 파고들며 지냈는데.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가보다.
굴레와 고립, 갈래와 그름. 기역과 리을은 고작 네 번을 세면 되지만 그 네 걸음이 참 멀고 어둡다.
이제 낮 시간엔 과자도 먹지 못한다. 고작 60g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토끼눈이 되는 꼴이라니.
항상 이맘때엔 눈물이 잦다. 출퇴근마다 우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