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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연주하는 건반의 음표 사이 간격이 좋았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건반을 들었지만, 그의 왼손 간격과 오른손의 흐름은 다른 누군가에게서도 느껴볼 수 없던 치밀한 거리감이었다. 관계에서도 절묘한 거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선 그 곳에서 안정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만큼 흐릿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자주 그의 건반을 찾았다. 짓누르듯 비가 오면 THREE 앨범을 찾았고, 날이 괴롭게 평이하면 Async를 찾고, 다소 흐린 어두운 밤엔 Playing The Piano 앨범과 12를 찾았다. 다소 어려워 무언가도 닿지 못할 때는 Coda와 Async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소리를 짓는 일에 비참한 환멸이 문득 다가올 땐 Insen과 Cendre, Plankton을 들었다. 예전 작업실에서 MCML를 듣던 15년 구월 가을이 문득 아침 마음을 스쳤다. 어떤 글자로도 마음을 다할 수 없는 순간이 잦아지는 근래, 잃고 잊는 순간들을 마주할 땐 미어지는 듯한 쓴맛이 목 끝에 짙다.
다른 이와 소리를 짓는 모습도 참 좋았다. The Glass House 등 Alva Noto와 함께한 많은 공연들, Fennesz와의 앨범들. 건반에 손을 얹어야 할 순간이 찾아올 때면 무조건 그의 건반을 들었다. Airy Textile의 모든 공연 전날엔 항상 찾아 들었고, 특히나 매 공연에서의 즉흥 연주 컨셉 또한 매번 그의 순간들을 참고하여 다듬었다. 특히 f7e600과 마지막 목목목 공연에서의 첫 곡은 그를 오마주한 연주였다. 종종 노래하며 연주할 일이 생길 때면 공연 직전 그의 가장 고요한 곡을 찾았고, 새롭게 지어낼 섬세한 갈피를 잡을 때면 그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찾았다. 그가 소리를 다루는 방식이 좋았다. 다소 차가워보이는 뿔테 안경을 쓴 채 소리를 이야기하며 순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 나까지 웃음이 났고, 바흐를 연주하기 위해 고요히 건반에 손을 얹는 입술과 모습을 보면 고혹적인 분위기에 경탄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이었다. 백발이 드는 나이까지 소리를 지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준 사람은, 내게 처음이었다.
추모의 마음을 누구와도 공유하기 어려웠기에 특히나 SNS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차분해지는 마음은 슬픔의 또 다른 색채이자 고요한 무게감. 나는 슬픔을 공유하는 습관보다 홀로 모래성을 다듬듯 도닥이는 방법이 가까운 사람. 매장 정리를 마치고 조용히 좋아하는 파이프 연초를 한 보울 태웠다. 비가 제법 찾아온 초봄의 소리는 불투명한 환상감을 준다. 어두운 유리의 안쪽을 바라보는 듯한 소리들. 봄비는 늘 아프게만 오고 먼 발치 그리던 사람이 사라진 순간은 씁쓸하다.
누구보다 그의 건반과 그 자체를 사랑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겐 가장 아름다운 음악가였다.
부디 포근히 영면하길, 깊이 편안하길. 소리 지어 주어서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