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사월 이십팔일

eeajik 2026. 4. 28. 13:50

여실히 계절은 흐른다. 뭇 여러 일들이 다소 많았고, 새로운 방식과 행동으로 얻은 결과물도 몇 있었다만 구태여 이곳에 글로 적진 않겠다. 나의 죄와 잘못, 혹은 어떠한 의태, 그리고 차분하고 창백한 관념들이 눈 소복 내려앉듯 폐 언저리 어딘가에 다 그대로 쌓였다. 제법 긍정적이다. 아니, 긍정적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어쩌면 무의미하다는 말, 혹은 여전하며 변하지 않게 남긴 날선 시간의 가르침들을 그러한 단어로 뭉개버린 것이 아닐지 생각마저 든다. 무어든 무관하다. 나는 무관한 인간이며, 무의미한 이치다.

 

자리를 줄일 예정이다. 정확히는 이미 줄이고 있다. 꼭 필요한, 내가 가고 싶은 자리라면 근근히 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잘 모르겠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자리를 가지지 않고, 혼자 지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예정이다. 나를 아는 이라면 알다시피 술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는 어쩌면 술이 취하는 것 보다 술의 다양한 맛 자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 특히나 밤 시간대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 혼자서 내가 원하는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를 찾는 이 보다 이젠 내가 찾는 이를 더 원한다. 고요한 마음을 마주하는 일이 기쁘기에 쓸쓸이 무섭지 않은 편이다. 밤도 좋지만, 근래 마주했던 해가 맑은 아침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술을 줄이자. 짧더라도 하루에 소리를 하나씩은 짓고, 그림을 작게라도 그리고, 짧게라도 글을 적자. 

 

주변을 좁힐 생각이다. 구태여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이 현답일 듯 하다. 어차피 오랜 시간을 알아온 곁은 많이 줄어들었고, 나 또한 그러한 사람을 더 만들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연이라는 것은 참으로도 얇고 강한 실 같다. 그럼에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한 쪽만이 해낼 수 없는 것이 연이며,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연이다. 나는 여전히 그 누구보다 내 마음 속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는 일이 참 마음이 평안하구나 싶다. 일이 아니라면, 카카오톡을 지우고 지내며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밤 시간대에는 몇 메신저를 열지 않는 일이 좋을 듯 하여 매번 그럴 순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볼 예정이다. 

 

내년에는 음악을 주업으로 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너무 오래 걸어왔기에 아예 모든걸 그만둘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작업실은 정리하고 주요 악기들만 남긴 채 스피커와 소악기 등은 판매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게에게 잘못을 짓는 마음도 슬프고, 더는 어떤 묶음에 엮이고 싶지도 않다. 말은 참 아프지, 본인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 혹은 조금은 그렇게 느꼈을수도 있지만 - 주변에서 들은 단어와 어법으로 나를 가리켜 상처주고 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말의 크나큰 단점이다. 의식이던, 무의식이던 습득된 단어는 비슷한 상황에 쉽게 씌여지기 마련이니, 상대를 기쁘게 하기보다 아프게 하는 일이 더 쉬운 것이 언어이지. 자신이 아픈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오만이자 무명이지. 자신은 연민에 가까울 정도로 다루지만 남에게는 쉬이 창을 꽂는 것이 인간의 우스운 점이지. 차라리 목소리를 주로 다루기보다 글을 주로 적으며 묵묵히 살고 싶다. 매일이 아프지만, 이제 아프다는 티를 내지 않을 뿐더러 티도 잘 나지 않는다. 웃지 않는 대신 잘 울음도 나지 않고, 오히려 먼 곳에 눈을 두고 입을 닫고 지낸다. 오늘 저녁부터는 근래 좋아하는 음식 두 가지를 앞으로 그만 먹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림 위에 소리를 얹었다. 아주 어릴 적 부터 평안의 공간이 여의치 않던 내게 바다라는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품이자 스산하면서도 포근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늘과 땅 보다는 바다와 밤에 가까운 소리를 짓고 싶어했었고, 그러한 과정으로 인해 어느 정도 만들어 온 어법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마음이 기뻤다. 사실 어쩌면 나 자신이 가장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작업하는 내내 오랜만에 큭큭 웃었다. 오랜만에 나와 혼잣말을 했다. 다시, 다시해야지. 그 소리 말고 이건 어때. 덴마크의 바다가 어울릴 것 같아. 너무 건반이 많아, 줄여야해. 이 연주는 다른 곳에 사용하자. 다시 해보자. 이런 소리도 마음에 들어하실까. 공진을 좋아해주시니 공진에서 사용한 악기를 다시 사용해볼까. 여전히 이 악기 소리는 좋네. 그렇구나, 나는 이러한 소리를 좋아했지, 저 어딘가 흐르듯 유영하고 소요하는 어떤 생명체처럼 헤엄보다 부유에 가까운 삶을 살고 싶었지. 나는 청색을 좋아하는구나. 적색보다 청색을 더 사랑했구나. 숲보다 바다를 더 아끼었구나. 잊고 지냈다. 붙잡아야지, 잃어가던 것. 당신의 가사는 여전히 나의 삶의 어떤 분기점에 지표를 짚어주는구나.

 

나는 슬슬 몇 자리를, 그리 넓지도 않았던 자리지만 피하며 비켜줄 때가 되었다 싶다. 다들 행복하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외부인이었다. 

 

'mouth >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 오일  (1) 2026.05.05
오월 사일  (0) 2026.05.04
십이월 팔일  (0) 2025.12.08
칠월 십일일  (0) 2025.07.11
유월 오일  (1) 2025.06.05
Share Link
reply
«   2026/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