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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리

eeajik 2017. 12. 15. 15:40

고등학교 때 알았다. 어쩌다 보니 만나서 술을 한 잔 했던 것 같다. 작은 시작이 누구나 그렇듯이 왜인지는 뚜렷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주 가지 않는 홍대의 술집에서 사는 이야기를 그럭저럭 나누다 가사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쓴 제목과 가사가 말도 안되게 깊고 좋았다. 사실 그 자리의 그 순간의 풍경이 기억날 정도로 적잖이 놀랐었다. 지금도 그 두 곡의 제목을 기억한다. 그 다음부터 몇 번 만나서 이것 저것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곡을 편곡 ‘해 주기도’ 했었다. 짧게나마 음악과 악기를 알려주기도 했었다. 서로의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며 주변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비슷한 음악 취향 덕인지 같이 노래하기도 했다. 사랑해 마지 않는 몇 카피곡으로 공연도 하고, 내 친구들과 함께 작업실에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근데 그 것 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은 사라진 [모두들 사랑한다 말합니다] 라는 상수의 2층 바 (앨범의 3번 트랙은 사라진 그 가게에 대한 오마주이다) 에서 불현듯 생각난 코드 하나에 노랫말과 음을 붙여 함께 곡을 짓기 시작했고, 그 날이 많이 지난 언젠가. 그 날. 너무나 슬펐던 노란 4월 16일. 함께 첫 곡을 완성하고 이름을 지었다. 그 곳에서 쓴 곡은 타이틀 곡으로 정했다. 그리고, 팀 이름이었던 [몸소리] 를 앨범 제목으로 정하고, 팀 이름을 다시 찾았다. 두 꿈. 두 사람의 꿈이지만 한 단어니까. 두 꿈으로. 나는 선영이의 목소리가 좋다. 자신의 감정을 과하게 호소하지 않고, 왜인지 가슴에 툭 던져주는 듯한 목소리. 비참하지 않은 듯이 텁텁하게 말하고, 자신을 깊게 방치하는 듯. 그런 선영이의 목소리에 악기를 연주하는 게 좋다. 함께 노래하는 것 마저 너무나도 좋다. 선영이의 아름다운 곡들을 내 손으로 더 빛나게 하는 것. 그래서 나는 두 꿈을 좋아한다. 나는 선영이의 곡과 목소리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잘 안다고 감히 말한다. 선영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선영이와 함께 하는 대화와 음악이 너무나도 좋다. 나는 두 꿈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그럴 수 있을 거야. 자켓은 함께 그렸다. 무정형은 정형을 불러오기 마련이라 믿고 서로가 그리고 싶은 걸 그렸다. 믹싱은 일부러 러프하게 했다. 과하게 뜯어지는 부분도 일부러 잡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고, 흐려진 기억의 담겨진 모든 걸 몇 분 안에 자연스레 담아내고 싶었다. 목소리도 많이 다듬지 않았다. 정말 투박하게 옆에서 부르는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을 원했다. 사실 계획에는 본디 세 곡이 더 있었다. 그렇지만 두 곡은 조금 더 다듬어서 싱글로 발매할 예정이고, 내가 쓴 한 곡은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 솔로곡으로 곧 나올 예정이다. 포기할 줄 아는 법을 배웠다. 분명 나는 선영이와 노래하며 많은 것 들을 배운다. 단지 앨범에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앨범의 가장 기본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노래와 악기와 믹싱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내가 바라는 건 듣는 모든 분들이 [트랙을 순서대로 듣는 것] 단 하나다. 우리가 이야기를 담은 모든 걸 머릿속에서 그려 줬으면 좋겠어서. 연주곡이 지루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냥 틀어두고 잠들거나 멍하니 있어도 괜찮다. 지나치는 풍경 같은 소리들을 원했다. 돌이켜 보면 잘 기억은 안나지만 멋진 길목처럼. 우리는 당신의 풍경이 되길 바란다. 바쁘고 지친 당신의 빈 틈에 그대도 모르게 스며들어도 괜찮은. 4월이다. 잊지 못할 날을 선물해주는 4월. 페이스북에 4년 전 오늘에 선영이와 친구가 된 날이라고 나오더라. 앨범을 발매하는 행위는, 왠지 모를 잊혀지지 않을 날들을 미래에 나에게 선물해가는 과정인 듯 하다. 함께 노래하며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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