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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토록 바라지 않는 너무 어려운 날

아직은 나에게 기념일이란 말은 멀기만 하고 어렵다. 사실 따지자면 반드시 기념되는 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애써 ‘기념이 되기를 바라면서’ 억지로 웃으려고, 즐기고, 마시려고만 하는지 나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게 피어나는 억지들은 사소한 문제가 비대하게 커지기도 하고, 그 사소한 문제는 무거워지고 깔리기 마련이다. 혼자 보내는 밤과 시간과 특별한 날을 왜 씁쓸하게 보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혼자 걷는 사람을 비참하게만 바라본다. 혼자는 혼자일뿐 그 말에는 아무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단색일 뿐이다. 24일에서 25일이 지나는 밤, 근처에 봐 두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쩌다보니 날은 많이 추웠고 새로 산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었다. 걸어가면서 길을 잘 찾지 못하는 날은 계속해서 길을 생각했다. 두 달 전, 친구들 몇 명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왔던 근처의 칵테일 바로 걸어갔다. 사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들어가는 시간이 25일로 넘어가기에 적당한 시간이길 바래서 걸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다양한 칵테일과, 그것들 하나하나의 색다르고 좋은 퀄리티에 멋부리지 않은 모습과 맛이 인상깊었던 곳이었다. 24일 23시 50분 쯤. 문을 열었다. 아직 많은 사람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남녀였고 남자는 잘 모르는 칵테일들을 보며 메뉴를 고르는 사람도, 알아 온건지 평소에 좋아하던건지 골라내는 사람도 있었고, 술을 마시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바라보고 있고, 대화를 나누려고하고, 크리스마스에 만족하는 그런 모습들. 처음엔 카운터 자리 쪽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했다. 혼자 두 테이블이 붙여진 곳을 앉았는데  이내 자리가 나서 주문을 하고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파우스트, 라는 칵테일을 시켰다. 하이볼 스타일이 아닌 온더락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 나로써는 온더락 위주를 찾다 발견한 새로운 술이었다. 사실 파우스트를 좋아하는 마음도 조금 영향이 있었다. 이름과 어감, 그리고 분위기까지 마음에 들어서 주문한 그 박사는 곧 자리로 왔다. 탁한 검붉은 색에 너무도 다채롭고 화려한 맛 속에 강하고 두꺼운 밑바탕의 맛이 느껴졌다. 너무 마음에 들었고, 새로 사 간 담배를 뜯었다. 사실 아주 오래간만에 화이트 멘솔을 사볼까, 싶었지만 그 정도의 용기는 부족한건지, 아니면 그러고 싶지 않아서인지, 평소에 피우던 담배를 샀다. 그리고 가지고 다니는 성냥을 켰다. 카운터 바텐더 여자는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산타 코스튬을 하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이어폰을 낀 나는 새로운 노래를 듣고싶었지만 그래도 꼭 듣고싶은 사람들의 노래를 들었다. Damien. Czars. Elliott. 주변의 소음이 꽉 다물어지고 나는 조용히 차가운 물과 술을 번갈아 마셨다. 그러던 중 바텐더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는게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더니 이어폰을 잠깐 빼달라는 시늉을 했다. 뺐더니 내가 익숙하다고 한다. 왔었다고 끄덕대니 저번에 왔었던 달을 말하면서 타투 때문에 기억이 났다고. 익숙했다고 했다. 끄덕대고 고맙다고 말하고 웃었더니 왜 이런 날 혼자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혼자가 좋아서. 라고 말했다, 여자는 외롭지 않냐고 말했고, 난 외로운것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할 일이 많아서라고 말했다. 여자는 그렇구나. 하고 웃고, 난 파우스트가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잠시 뒤 새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 놀라면서 인사를 했다. 친구였나 보다. 난 다시 이어폰을 꼈다. 술을 천천히 마시고 싶었기 때문에 입술에 젖을 만큼만 마셨다. 잠시 뒤, 메인 바텐더로 보이는 분이 옆에 앉아서 건배를 권했다. 이어폰을 뺐다. 예술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서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했다. 타투가 예쁘다고 말해주셨다. 고맙다 말하고,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여드렸다. 외롭지 않냐는 말을 물었고, 난 아까와 비슷한 대답을 말했더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사실 잘 몰라서 대답을 하진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고 말하셨다. 그렇다고 말을 했다. 사실 어제까지 내가 느낀 감정이니까. 어쩌면 오늘까지도. 두어 마디 더 말하며 두어 번 더 건배를 하고, 친구 한명을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말해서 좋다고 말했다. 긴 카운터석의 저 건너편에 있던 머리가 짧은 클래식한 단단해보이는 분이 왔다. 인사를 나누었고, 그 분은 나에게 호세쿠엘보 한잔을 권하셨다. 메리크리스마스. 술을 감사히 받았다. 음악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우리는 그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와 너무도 비슷한 생각과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부산 사나이었다. 부산에서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을 하는. 아침 알람이 하농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멋진 분이었다. 말보로 미디엄을 피웠다. 그리고 음악 이야기를 했다. Damien, Elliott, Sigur ros, 이적, 윤상, 정재형, 이소라, 박새별, Bjork, Mcknight, Incognito, 김건모, 양희은, Lisa, Mate. Nell. 그리고 내가, 그 분이 사랑하는 수많은 아티스트. 말이 끊기지 않았고 데킬라를 두 잔째 비웠다. 웃으면서 대단한 취향이라고 농담을 했다. 내 음악을 궁금해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바리스타. 후암동에 카페에서 일을 하고, 패션과 주식을 공부했던 사람. 엄청난 센스와 웃는 모습이 정말로 멋진. 일하고 있는 카페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할 말이 너무도 많다고 느꼈고, 술 만큼 좋아하는게 커피였으니까 반드시 가기로 약속했다. 메인 바텐더가 웃으며 이럴 줄 알았다고. 밤이 짧다고 다같이 건배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 옆 자리 한칸을 비우고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가게에 들어설 때 부터 나이가 적어보이진 않지만 많아보이지도 않는 세련된 두 사람. 디자인을 하는 두 사람. 대화가 섞이기 시작했다. 클래식 바리스타 형의 옷 이야기와, 내가 가지고 다니는 성냥갑 이야기, 우리가 나눈 음악 이야기와 내 안경 이야기, 내 피어싱과 내 타투 이야기, 우리가 처음 만난게 믿기지 않다는 이야기, 술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 오늘 밤에 대한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렇게 많은 말들을 나누었다. 내가 음악을 하냐고 물어서, 나는 음악을 포함한 종합예술을 한다고 말했다. 카운터에 계신 바텐더가 한 분 늘었다. 쿠마파크의 앨범 디자인을 한, 윤상과 윤상의 음악을 사랑하시는 25일 공연에 가는 바텐더 분. 그리고 윤상의 곡을 틀었고, 이소라의 Amen을 틀었다. 그 두 여자분이 맥캘런을 땄다. 카운터 석에 전부 한 잔씩. 웃으며. 쿨하다고 말했다. 당연한 소리. 하고 받아쳤다. a.m 2:00. 자리를 바꾸었다. 소재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손이 거칠다고, 만져보라고 말했고 정말 너무도 거칠었다. 그렇지만 그게 흉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솔직한 마음으로 (사실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그대로 튀어나왔었다) '멋진 것 같다.’ 고 말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고 말을 했다. 울컥한 듯 고개를 잠깐 숙였다. 왜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멋진 일로 생겨난 영광인데. 그리고 건배를 했다. 라틴 음악을 좋아해서 기타를 치고 싶어하는, 그렇지만 손톱 때문에 섣불리 기타를 시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용기를 주고 싶었다. '나는 손이 너무 작아서 기타를 치기 힘들지만 그래도 기타를 쳐요. 어릴 적 배웠던 피아노 학원에서 음악에 재능이 없다고 말했지만 내 음악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건배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안녕 맥캘런. 안녕 새벽 두 시. 내 안경이 싫다고 말했다. 왜냐고 물었는데, 얼굴과 눈이 날카롭진 않다고. 조금 차갑고 외로울 뿐인데, 안경이 너무나도 딱딱하고 강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눈이 아깝다고 말했다. 다크서클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 너무 믿지 않아도 된다고 웃으며 말하고, 다크브라운 색의 아주 조금 작아진 안경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너무 고마웠다. 난 안경을 바꾸고 싶던 때였다. 머리를 조금 자르고, 스타일링을 하면 멋질 것 같다고 말했다. 클래식한 것도, 퇴폐적인 것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안경을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딕풍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아무 상관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도 나에게 뚱뚱하다고 하지 않았다.괜시리 그게 행복해졌다. 고맙습니다, 내가 보낸 5개월의 힘듬. 버텨서 달라진 나.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하다고 조금 느꼈다.  갑작스레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내게 물어왔다. 덜컹. 이 말을 꺼낸 순간 그 모든 순간이 바닥으로 꺼져버리고 나와 그 사람의 자리만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다시 되물었다. 마치 내 답을 다시 만들어주고 싶다는 기분.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만이면 안된다고.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 말하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한다고. 이 말을 들은 순간, 지난 내 몇개월의 고민과 화두가 한번에 부서졌다. 그래. 그랬다. 열심히 한다는 말로 덮어두기에 내가 사랑하는 내가 하는 이 일은, 너무도 크고 나에게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난 열심히 한다는 말보다 더 큰 말을 보았어야 했다. 마시던 술이 머릿속에서 얼어붙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아무런 말도 못했다. 맥캘런을 한잔 더 마셨다. 탱고와 보사노바 이야기를 했고, 자신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노래가 바뀌었다. 자리를 바꾸었다. a.m.02:40.잠시 나갔다 와서 멋진 바리스타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즈음 음악의 이야기와 비판, 슬픈 이야기들, 화가 나는 이야기들. (여기에 적으면 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적지 않겠다) 그리고 호세를 한잔 더 마시고, 이야기를 그만 하고 싶어서 가만히 대화를 듣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 번 더 성냥을 켰고, 건배를 했다.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a.m.03:15. 좋아하는 브랜드의 이야기가 나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지방시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궁금하던 옷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질문을 하고, 배웠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를 아는 것과 센스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곳이 마쳐지면 무엇을 할거냐고 물어보았다. 바리스타는 멋지게 웃고 잠시 뒤 소주한잔 마시러 가겠다고 말했다. 나도 맥주를 한잔 하러 갈 생각이었다. 남은 파우스트를 전부 마셔버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a.m.03:30. 디자이너 두 사람은 일어섰다. 맥캘런은 전부 마신 채. 아쉽게 인사를 나누고, 꼭 같은 카운터 자리에서 약속하지 않은 순간 다시 반갑게 말하자고 했다. 끝까지 멋졌다. 난 바리스타와 둘이 남아 남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담배를 피웠고,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사람은 우리와 한 테이블 뿐이었다. 멋진 메인 바텐더는 친구들과 그 한 테이블에서 맛있게 술을 마시며 맛있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새로운 바텐더 한 사람이 왔다. 윤상과 김건모와 로맨틱펀치, 쏜애플을 좋아하던 털모자를 쓰고 온 동그란 사람. 메이트의 그리워를 바리스타가 신청했다.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들었다. 음악. 을. 들었다. 음.악.을.들.었.다. 음.        악. a.m.04:00. 일어섰다. 내가 마신 파우스트 박사를 계산하고. 바텐더는 새로 온 첼리스트와 대화를 나누고, 바리스타는 핸드폰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난 인사를 했고,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더 이상 오늘의 만남을 퇴색하고 싶지 않았고, 기약했다. 다시 보잔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거짓이 아니라. 이 밤 처럼 다시 한 번 더. 바리스타는 멋지게 웃고 바텐더는 웃고 메인 바텐더는 다시 꼭 오지 않아도 된다며 실없는 농을 던졌다. 난 택시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출발했다. 멋진 분위기와 색깔의 전등과 새롭기만 하고 맛있고 멋진 술은 아니지만. 내게 익숙하고 가장 좋은 친구들에게 갔다. 맛있는 맥주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여섯시 삼십 이 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렇게 나에게 24일과 25일 사이의 새벽은 기념일이 되었다. 잊지 못할. 


오후에 일어났다. 의외로,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평범한 날이다. 날짜가 25일인 수요일 이른 오후. 문득 오래간만의 따뜻하기만 한 밤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외롭지 않았다. 이런 새벽이었다는게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조금 남은 아쉬움은 창백해지지 않고 외려 더 선명하게 빛났다. 그 행복감이 지난 새벽을 더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보정처럼. 난 당신들과는 어쩌면 조금 다르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에게 훨씬 꽉 찬 새벽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의외의 만남은 그 날을 기념할 수 있는 '기념일’ 로 만든다. 실없는 웃음과 실없는 약속이, 그리고 대단한 순간들이 가득 감싼 밤이다. 그 새벽 선택은 나에게 후회없다는 말로는 아쉬울 순간을 선물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내가 이렇게 알지 못하고 보낸 많은 순간이 있었을 테니. 하지만 후회해봤자 어쩌랴, '이제부터라도.’ 라는 누구나 하는 말들을 누구나 쉽사리 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마음에 두었으니 되었다. 이제 되었다. 되었다.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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