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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소리, 카트를 미는 소리나 혹은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에서 까지 짜증이 나는 정도라면 최근의 나는 심각하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새벽녘 잠이 쉽사리 오지 않다는 그 간단한 이유 하나만으로 동네를 다음 날 시간 걱정 없이 걸어 다녀 본 적이 언제일까. 기억도 흐릿한 이 년 전이 문득 그리워졌다. 약간은 서늘한 바람의 냄새, 그리고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 해가 뜰 때 쯤 돌아와 이불을 덮어쓰고 잠 들던 그 시간. 제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가사를 한 편 쓰며 돌아오는 길, 다음 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 마음이 어째서 사라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시작했다. 창가엔 제주의 텅 빈 공간이 아닌 빽빽하게 들어 찬 서울의 건물들, 숨을 쉬지 못하는 좁은 틈새의 악취. 어제 제주에서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서 다녀왔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함께 아는 지인들의 선전포고 그대로 오후 3시부터 술자리가 시작했고, 인당 거의 12병은 더 먹고 나서야 오전 세 시 술자리가 끝났다. 계속 마시긴 했지만 사실 중간부터의 기억은 없었다. 종류별로 술을 엄청나게 마셨기에 포기하자는 마음으로 오히려 던져 둔 오늘 아침이었건만, 나는 호텔에서 여덟시에 일어나서 몸을 깨끗하게 닦고 화장에 머리 손질까지 마친 후 하루를 꽤나 싱겁고 수월하게 시작했다. 오히려 사라졌다 싶은 시간을 얻은 기분은 평소보다 개운해서일까, 오늘 하루는 훨씬 잘 보낼 수 있었다. 오전부터 해장국집에서 다 같이 막걸리를 2병 정도 더 마셨고, 지인의 결혼 상대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걷고 택시를 타고 지인의 가게에 가서 마실 것을 사고 떡을 선물 받았다. 감사한 마음에 망고 주스를 사서 건넨 후 지인 둘과 함덕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유명하다고 하던 카페 델문도의 라떼는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진저 레몬 에이드가 좋았다. 그렇지만 넓은 파아란 바다와 하늘 그리고 수평선은 너무도 훌륭했고, 바다에서는 작은 게와 소라게, 그리고 그보다도 작은 고둥들이 기어다녔다. 물은 시원했고 모래는 보드라웠고 수평선은 곧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하늘을 마냥 올려다보고 있었다. 계속, 그칠 기미도 없이 계속. 새파랗다는 말이 너무 저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 빛. 그 안에 잠긴다 해도 눈 속에 가득 달이 차오를 것 만 같던 마알간 바다의 물빛은 역시나 사람을 괜시리 눈물짓게 했다. 내가 죽으면 저 바다에 가루를 뿌려주세요. 나였던 뼛 가루 하나 하나 헤엄치며 다닐 수 있도록, 깊은 바다까지 추락해 어둠을 만날 수 있게. 고마운 지인들과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며 돌아오는 길, 작은 일에도 웃고 간판을 보고도 싱겁게 웃고, 예쁜 학교들을 보았다.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인들의 식사 겸 가게에 들러 마지막으로 딥 디쉬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온 나는 문자를 적는 내내 왜인지 기분이 먹먹해졌다. 새벽 두 시의 마음. 그 마음을 취하지 않은 맨 정신으로 느낀 적이 언제일까. 나는 다음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탓에, 반드시 일찍 일어나서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처럼’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탓에 내가 잠들지 않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단순한 불면증이라 여기며 매일 술을 두 병씩 이나 들이부어 억지로 나를 재운게 아닐까. 새벽 생각은 대체로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생각들을 낳았지만 요즘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게 새벽은 취중의 시간으로 변했고 어지러운 생각들의 연속과 구토 속 에서 내 생각들은 분해되거나 음식물과 쏟아져 나왔거나 연소되었더라. 어디로 갔을까, 내가 내게 말을 걸 수 있게 해주고 곡을 적을 수 있게 해 줬던 그 시간 속 단어와 문장들. 지금은 내가 쳐다보아 주지 않아 어디론가 버려진 잔해들. 내가 곡을 예전처럼 많이 쓰지 못하게 된 이유도 이것 아닐까. 사람마다 가장 몸이 깨어나는 시간이 있을 텐데 나와 모두는 그걸 외면했다. 서울은 여유를 부수는 곳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하는게 죄책감이 드는 곳이다. 오후 1시 쯤 직장인 가득한 식당에서 술을 두 병 넘게 마시면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아무 일도 안하고 종일 자거나 놀면 비웃음 당하고 걱정을 받고 눈치를 받는다. 가끔은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라 명명한다. 그 사람의 마음 속의 움직임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보여지는 표정과 행동으로만 판단하려고 하지. 표정이나 풍경은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슬픈 노래를 웃으면서 부르는 것과 기쁜 노래를 무표정으로 부르는 것 만큼 별로인 건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모두들 표정은 지쳐 있고 그래서인지 길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다니게 된다. 조금 느리게 걷다 보면 나만 정체된 기분이 든다. 나만 바쁘지 않으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 걸음법이 원체 느린 나는 다른 것 필요 없이 조금 천천히 걷고 싶어서, 그리고 다리가 아프고 지쳐 잠깐 서서 주변을 바라보고 싶어서 가만히 서 있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만 급하고 빠르게 지나치는 누군가에겐 장애물, 방해되는 존재만 되어 어깨를 치인다. 나는 그 치인 어깨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게 아닐까. 그 짜증스럽게 보는 표정이 무서워 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방법을 잊었다. 사람들이 덜한 곳에서 천천히 걷거나 서 있는 사람은 장애물이 아니다. 이정표이고, 붙임성 좋은 누군가에겐 여유로운 대화의 상대이며,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주는 선구자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마음의 평안에서 오는 새로운 행동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 또한 천천함에서 흘러나온다. 일반적인, 일방적인 흐름의 풍경이란 건 무섭다. 보다 보면 내가 흐르지 싶지 않아도 휩쓸려 간다. 급히 따라가다보면 발목을 다치고 늦어진 나는 비난받고 비웃음을 사지. 생각 해 보니 내가 무시하고 치워 두었다고 생각한 집의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말은 쉽게 사람을 찌르고, 나는 찔린 자리가 잘 낫지 않아 미처 아물기 전에 다른 곳을 찔리더라. 사랑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게 맞지 않는 사랑의 방법은 고통이다. 돈이란 건 사람을 결정짓는 가장 쉬운 무언가가 아닐까. 내게 편안한 [집] 이라는 존재는 없었고, 아직도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취기와 소리만이 내게 그런 존재다. 아직도 1년 전 다녔던 정신과 상담에서 의사가 한 말 중 하나가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집이 없어요. 평안한 곳이나 그런 존재가 없다는 거에요. 허공을 걷듯 발 디딜 곳이 없고, 비바람을 막을 곳이 없다고 느끼다 보니 혼자서 다 막아내려 하다가 이젠 오히려 웅크려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요.” 어제 밤에 나는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지인에게 업혀서 호텔에 왔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폐가 되는 걸 싫어하고, 특히나 음주 후 신체적으로 짐이 되는 걸 가장 피하는 나. 특히나 술이 아주 약한 편이 아닌 내게는 참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어서 신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호텔에 와서는 화장 잘 지우고 속 비우고 깔끔하게 머리까지 말린 후 샤워하고 기절 한 듯 잤다고 해서 더 재미있었다고 한다. 술집에서 돌아오는 짧은 거리, 돌아오는 내내 나는 얼큰하게 취해 업힌 채 뭐가 그렇게 좋고 기뻤는지 지인의 등 위에서 계속 웃었다고 한다. 다 같이 그게 웃겨서 또 같이 웃고 웃고 웃었다. 술을 마실 때 우는 법 밖에 모르며 대체로 침울해하고 말도 없이 마시던 내게 그 자리는 제대로 된 정신은 아니었어도 잠깐이나마 웃음을 가르쳐 주었더라. 여행의 장점이 뭐가 있을까 난 잘 몰랐다. 먹을 거 말고 새로운 풍경 말고 다를게 뭐 있냐고 묻던 내게 같이 동행한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다들 찡그리고 무표정인 곳에서는 나까지 표정이 그렇게 되더라고. 괜시리 힘들어지고 지치고 말이야. 그래서 왜인지 더 힘들어 지는 것 같아. 그렇지만 여행객의 표정은 대체로 맑으며 여유롭고 기쁘지. 휴식을 가지러 온 여행객이기에 가질 수 있긴 하겠지만..웃음기 머금은 그 표정들은 보는 나까지 조금은 기분 좋은 마음을 가져볼까 싶어지게 하더라. 그게 여행의 좋은 점 아닐까.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새로운 생각의 가능성을 여는 방법.”
Sound 라는 표현은 소리 라는 의미도 있지만,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단어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 같다. 나는 오늘 무슨 음악을 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