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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듯한 두려움, 공포를 느끼었다. 특히 요즈음. 하지만 그 이유를 몰라서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토닥임을 받지도 못하였고 그것의 대한 명확한 해결방안의 답을 듣지도 못했다. (물론 그런 해답은 없을 것이다.) 12월 29일 즈음 부터 느꼈던 그 공포의 이유를 매일 붙잡고 끝을 잡으려 애쓰다보니 어제만 해도 몰랐던 실마리가 한 가닥 잡혔다. 그 이유는 정말 내가 느끼지 못했었고 느끼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던 단어였다. 나이. 어림은 돌아보면 좋지만 순간은 뜨겁고 아프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 일 년을 보내었다. 탈락의 순간도 느꼈고, 사람들의 부러움도 종종 받았고, 완벽하게 달라진 나를 보며 쾌감을 느꼈고, 건강해지지 않은 몸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안쓰러움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보여지는 나, 그리고 내 속의 나. 내가 이뤄 보인게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다. 난 한게 없다는 그런 자괴감을 먹고 자라는 썩은 나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내가 미워하던 결과없는 예술에 대한 허세와 말만 가득한 썩은 열매가 되는 기분이 가끔 들고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그렇게 되버린 내 미래를 상상하면 토악질이 난다. 써 둔 곡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 곡들을 들려줄 사람들이 없다. 주변 사람을 제외하고 새로운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싶고, 말해주고 싶고, 노래하고 싶지만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또한 이름의 중요성일까. 그래서 요즈음은 곡을 쓰지 않는다. 개인적인 연습에 몰두하고 더 집중하는 편이다. 글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되 개인적임은 사라지고, 건강은 쪼그라들고. 부딪힐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만족하지 못한 부분들이 보여 다시 고민의 고민을 해야 하고, 그럴수록 시간은 점점 늦어지어 나는 또 이렇게 공포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여가시간을 줄이고 나 스스로를 깎아내는 연습과 테크닉을 늘리고 있다. 최대한. 내가 하지 않았던 만큼. 레슨을 다시 받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분에게. 오랜만의 레슨이라 그런지 너무도 떨리고, 사람을 앞에 두면 떨리는 이 모습은 그대로다. 누군가에게 사사받는 그런 기분이 너무 간만이라 그런지 지난 시간과 비교하게되고, 나를 조금 더 많이 사용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 하나는 지난 나의 생각과 지금과의 변화다. 스승을 많이 두는 것이 과연 좋은가, 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과연 그것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 고민보다 큰 답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맞는 가르침이 존재한다.’ 라는 폭넓은 말. 그 말을 요즘 들어 다시 느끼는 편이다. 예전에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도 물론 멋진 분이셨다. 음악적으로도, 기타를 제외한 부분에서도 나와는 상당히 잘 맞았던 분이지만 나에게 발전이 확실한 그런 맞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내 스스로의 연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전의 문제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직접 부탁해서 받아낸 레슨이라 그런지, 혹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스스로 더 달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당시 고전했던 기본 자세를 기억한다. 하지만 플레이에는 아직까지 섞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레슨 첫 날, 아무거나 쳐 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평소 치던 대로 쳤다. 하지만 자세가 괜찮다고, 한 부분만 조금 바꿔보라고 해서 쳤더니 그렇게 치면 된다, 자신도 그렇게 친다, 고 하셨다. 뭔가 벙쪘다. 내가 2달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 한 순간에 해결이 되었다. 그 것이 스트레스라 기타를 잡고싶지 않았는데, 그 것이 너무도 말끔하게 해결이 되었다. 누군가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다. 자신에 맞는 게 분명 존재한다. 레슨을 받은지 꽤 시간이 지나다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에 대한 생각. 과연 내가 소비한 시간은 '소비’ 였을까, '낭비’ 였을까 라는 생각. 그 생각의 시작점에는 나이라는 나를 갉아먹는 시간의 파편들이 모아진 불가사리같은 놈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두려워하며 시간을 걷고 있었나보다. 내가 소비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테크닉과 같은 시간 투자에 비례하는 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 동안 나는, 그것에 비할만한. 혹은 그것과는 다른. 아니, 어쩌면 아예 얻은 것이 충분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뒤죽박죽 난장판이지만, 글을 정리해서 쓸 마음도 들지 않는다. 침대 아래 있다고만 믿었던 괴물을 눈 앞에 마주한 기분이다. 공포와 수치심. 오늘은 글을 이 것을 마지막으로 쓰지 않을 예정이다. 젊음으로 이해받을 수 있는 무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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