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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일지 모른다. 이렇게 사람을 광장시장 녹두부침개마냥 뒤집었다 말았다 하는 일은. 일부러가 아니라면 내가 억지로 그놈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내가 약하다는 뜻일 테며, 난 그 더럽고 안쓰러운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무 말 없이 이것이 마치 사실이고 진실인 양 기름칠된 철판 위에서 냅다 뒤집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 며칠간 똑같다. 건반엔 손도 대기 싫고, 기타는 단순한 기본 연습만 한다. 짓는 일은 없다. 친구들은 곡을 쓴다. 감탄이 나올 정도의. 멋진 노래를 하고. 나는 지금 가고일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정체되어있다. 명절 고속도로마냥. 연습이 하기 싫은 건 또 아니다. 당장 성장하고 싶은 헛욕심을 채우기 위해 느려터진 거북이 발걸음같은 노력을 하는 것을 평소에도 즐긴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혀 가능치 않다.또 다시. 사람들이 무서운것인지, 사람들의 글이나 손이 무서운 건지는 모른다. 단지 그렇게 좋아하던 술약속도 내가 잡지 않으면 탐탁치 않게 피하고 싶고, 기분이 너무나도 불쾌해져 아무 말도 없이 불만 붙이게 된다. 그렇다. 술약속. 할 말이 있다. 며칠 전 멀리 떠나는 친구의 송별회 겸 간단하게 신촌에서 만났다. 평소 먹지 않았던 걸 먹어보느라 보드카믹스(최악이다. 1000원짜리 음료수보다도 못한 맛.)이라던지, 쓰잘데기 없는 돈낭비 안주 등을 시켜먹었다. (햄치즈 카나페라는 보기좋은 이름의 안주를 시켰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값싼 슬라이스 치즈에 말라 비틀어진 햄 쪼가리에 물기없는 뻣뻣한 오이를 덮어놓은 것 몇 개가 나올 뿐이었다.) 역시나 나를 뺀 아이들은 웃으며 여자 이야기라던지, 빈 말들을 했지만. 난 도저히 섞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시체인데 누구를 탓할까. 딱 잘라 말해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의 술집이었다. 클럽 음악이 나오고, 게임기나 포켓볼이 있고, 란제리쇼 영상이 벽걸이 TV에 가득 터져나오는 그런. 여자들은 남자를 찾고 남자들은 여자만 눈으로 핥고 있는.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곳이다. 심지어 이 날 나는, 너무 가기 싫었던 나머지 늦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방금 너무도 적절한 이 문장이 생각났는데 너무도 정확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있던 도중, 친구는 내게 오늘따라 왜 말이 없냐, 물었고. 나는 어쩔 수 없다고만 대답했다. 그렇게 있었다. 친구가 우리가 전부 아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며 데리고 오기 전까진. 오랜만이었다. 사실 그렇게 절친하다싶은 아이도 아니었고, 어쩌면 나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아이었다. 그렇지만 나름 가까웠다고 느꼈고, 사실 반가웠다. 정말이다. 정말 반가웠다. 그래서, 오랜만이라,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를 보는 듯 마는 듯 내 뒤에 서 있던 친구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날 지나쳤다. 회전문처럼. 나는 나약하게 밀치어져 자리에 앉아 또 다시 물같은 술을 마셨다. 살이 빠져 힘이 약해지고 아파서 약해지고 마른 게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이렇게 쉽게 밀쳐지다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처음 전자담배를 피워보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갔고,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부끄러웠지만. 난. 아무 말도. 못 하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있다가, 버스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신나는 척 하며 돌아왔다. 저번 주 금요일, 그러니까 위 약속의 전날.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느라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 한 동안 볼 수 없다는 우울함과 내가 겪고 있던 시퍼런 이빨같은 두려움에 섞여서인지 3차까지 가며 술을 퍼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달술집에, 용산 앞 가게에, 용산 포장마차에. 소주에, 매화수에, 4종류의 막걸리에, 맛있는 안주에, 엄청나게 섞어서. 그 찬란한 자리에서 나는 괜시리 슬펐다. 나는 잘 운다. 너무나도 잘 운다. 눈물이 많은 건 알았지만, 그치만 그 날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보다. 다 같이 중간중간 소리없이 눈물이 고였고,그 작은 포장마차지만 우리는 멋진 음악을 핸드폰으로 조그맣게 틀어놓고 귀를 기울이며 낮게 속삭이듯 노래하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 때 만큼은, 참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다. 그 밤이. 그 달이. 아마 그날. 이소라의 눈썹달 앨범과 같은 달이었다. 그 밤은 그렇게 저물었고 나는 다음날 낮 혼자서 침대에서 기타를 조용히 쳤고, 그 날 늦은 낮에는 작고 낡은 회전문이 되었다. 나는 움직여야 한다. 더 이상 낮이란 놈과 밤이란 놈의 놀잇감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왜 나는 매일 약해질까. 왜. 이런 글을 왜 이런 곳에 쓰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를 안아주길 바란다. 당신이 누구건 상관 없고, 나의 이름을 알던, 나의 어떤 것을 알던 상관 없다. 난 아무 상관 없는 당신이 나와 많은 상관이 있길 바란다. 나를 알아줬으면 한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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