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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날 밤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유를 모르던 화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아침에 통화를 했다. 지겹게도 힘들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며 대화해 줄 그 사람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는 없다 이야기하는 너에게 나는 의문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평안한 안정감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걸까, 보이는 어떤 무언가에게 대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의아하고 한 면으로는 대단했다. 보이지 않는 소리라는 것이 나는 가장 온연하게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며, 그 중에도 가장 객관적이기에 가장 쉽게 변하기도 하고 쉽게 변치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매일 더욱 맹신한다. 그런데 어떻게 단 하나뿐만이 존재하는 (통계로도 불분명할 수 밖에 없는 유형의 개체인) 사람을 무형의 무언가보다 신뢰할 수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가만히 두어 보는 방법은 좋지만 마냥 내쳐 두는 방법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는 말은 내게는 무의미하다. 그냥 그렇게 퇴적돼 버리는 것은 부끄럽다. 더는 건드릴 수 없는 지난 시간. 잘 사용할 줄도 모르는 사서 악기를 집 안에 쓰지 않고 세워만 두는 것과 비슷한 행위의 결론에서 느낄 부끄러운 과거의 내가 남긴 무지의 무덤을 보는 듯할 비참한 감정과 그 시간이 나는 무섭고 아까워서 가만히 두지 못한다. 어제가 무섭고, 그저께가 무섭고, 그그저께가 무섭고, 저번주가 무섭고, 한 달 그리고 두 세달 그리고 1년 전과 수 천일 전의 내가 부끄럽고 무섭다. 나는 어떤 상태를 그대로 두지 못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상처의 딱지는 가려워도 절대 떼어 내지 않으면서 왜 내 마음 속 나한테 상처가 되거나 내가 지칠 일엔 망설임 없이 쇠붙이를 가져다 대는걸까. 나는 드러난 곪은 상처를 차라리 짧은 단도 혹은 괭이로 아픈 부분을 박박 긁어내며 내 스스로 차라리 지독하게 끝도 없이 몰아세우는 방법이 익숙하다. 긁어내고 뜯어내서 꼭 내가 아프다는 걸 극도로 자각해야 나는 내가 아파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멍청한 습관이 있다. '그래, 이렇게 했는데도 아프다고 하니까 이건 정말 아픈가보네' 라며 고문한 후 '인정해줄게, 이건 아픈거 맞아' 라고 내 다른 스스로에게 허락을 받는 그 방식이 내게는 익숙하다. 난 밤이 무섭다. 잠들기 직전의 나는 내게 극도로 가혹하고 잔혹하다. 쓰레기 같은 자식. 되먹지 못한 주제에. 아빠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불쾌한게 아니었다. 늘 그렇듯 그 얼굴과 몸에서 어릴 적 나에게 했던 언행이 다시금 떠올라서도 아니었다. 아빠가 술 취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아니었고 단지 엄청나게 단순하고 현실적이며 일상적인 그 순간이 늘 그렇듯 나한테 슬쩍 목구멍에 바늘을 끼워 넣는다. 그 사소하다는 말은 참 잔인하다. 작업한 곡을 전부 뒤엎고 아직도 내 모든 어법들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아 잘난 것 없는 내 모습이 보기 싫어 지치고 풀 죽은 채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잔뜩 가리고 이어폰으로 일부러 노이즈 심한 음악을 들으며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다. 자꾸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당연히 늘 그렇듯이 환청이겠거니 싶고 이어폰을 빼며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뒤에서 아빠가 편한 옷으로 달려 왔다. 엄마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러 나왔다고 말하며 반가움을 어색하게 숨기려 만연 웃는 그 순간 왜 당신이 그렇게 작아보이고 안쓰러웠을까.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체로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질문과 비슷한 요즘이다.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억지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뿐이다. 어릴 적 나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내 모습과 다르고 싶었다. 똑같은 말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다. 유행어를 극도로 싫어하는 습관은 그렇게 남아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구차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당당하고 싶었으며, 누군가의 말에도 굽히지 않는 고개를 가지고 싶었다. 많이 알고 싶었다. 지식이 많고 해낼 수 있는 표현법이 많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말로 못 하고 행동으로도 못 하니까 글로 적고 연주를 하고 싶었다. 외로울 수 있었지. 차라리 외로움을 유흥거리 삼아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말을 하려고 노력하며 노래하고 공연을 했다. 바닷물을 수저로 퍼마시는 짓을 떠나서 물에 몸을 담가서 입에 허겁지겁 쓸어 넣은 것과 비슷할 테지. 제대로 된 해소법을 아무것도 모르니 나는 외로워하고 지쳐하고 그럼에도 더 외로워지는 순간들은 마냥 취해서 잠을 자려고 했고 울다 지쳐서 밖에서 누운 채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누구던 부딪히기라도 하면 물어뜯을 개처럼 크게 울기도 했다. 괜시리 나를 검열하며 예쁘게 글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솔직함이 없는 내가 아무리 솔직하려 해도 나는 그만큼 솔직할 수가 없다. 수줍음이라는 이름 아래 내 입을 막고 있는 내 손이 싫다. 왠지 당신도 그랬을 것 같다. 방식과 상대가 다를 뿐이지 누군가에게 뻔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을 테다. 지난 이틀 새, 늘 그렇듯이 술을 마시던 밤에 깨어 어색함을 최대한 숨기려 행동하며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요즘의 당신은 왠지 모르게 예전에 비해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말투가 많다. 밖에서는 이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두 병이나 마신 술이 깨 버렸다. 당신은 언제부턴가 자의적인 이유인지 시간의 흐름 탓인지 내게 억지로 멋지려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실이 왠지 바늘을 삼킨 것 같았다. 지난 설날 나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했고, 내게 메세지로 사무실에서 드시던 편의점 도시락 사진을 보내 주고 밥이 힘들면 영양제라도 꼭 챙겨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는 당신의 문자에 답장을 그토록 망설이고 아낀 적이 이내 살면서 단 한번이 없었다. 나는 그 날 밤 그렇게 화가 났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이 정돈되지 않은 그 복잡한 감정은 아침에 지수에게 말한 동족혐오와 다를 바 없었다. 어색하게 웃는 내 모습이 두렵고 부끄러워 웃음을 숨기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숨기지 못할 웃음을 비칠 테지. 모르겠다. 오늘은 일을 그만 두고 현악을 듣고 싶다. 자연스레 모든게 사라졌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무슨 말 한 마디를 못 꺼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