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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위에서 글을 써요 나도 멋지게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건 사소한 것부터 너무 어렵습니다. 내가 멋지다고 느끼는 마음의 시작과 끝은 내가 나를 멋지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타인이자 나 스스로이기에. 하지만 난 그것을 하지 못한다. 난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에 멋진 몸도 가지지 못했고,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인정한 일 또한 없다. 돈을 벌지도 못하며, 그토록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약속부적격자. 전시회가 가고 싶다. ECM은 결국 가지 못했고, 맥긴리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쉼인지, 배움인지. (혹은 자괴감을 부르는 짓인지) 확실한건 난 방에 나를 가두고 있다. 스팀펑크전도 가고만 싶다. 엄지손가락 꺾이는 부분이 찌르는 듯 아프다. 이유는 모른 ..
만져보고 건드려보고 안아주고 웃고, 떠들다 놓아두고 떠나갈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쓰다듬지도 말아라. 네 손때묻은 내 몸이 저주스러우니까. 나는 네 생각보다 연약할지도 모른다.
아주 약간의 한자 혐오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아주 약간의 바램의 사이에서 난 글자와 언어를 아끼고 사랑하는 편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같은 이런 진부한 표현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이 상대방과 보다 다른 식의 전달과 획득을 원하기 위해 고민 끝에 (또는 순간의 직관적인 판단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언어를 존중하고, 비언어 (이 말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말을 좋아한다.) 또한 좋아한다. 생각을 하던 중 이 비언어라는 말 안에는 말 그대로 언어가 아닌 '무(無)언어’ 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행동 하나와 눈빛까지, 소리 하나까지 모든 것이 언어라고 생각이 든 이후로는 섣부르게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잡소리 문장을 여기에 끼워넣어본다. 넣는다. 그렇지만 한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이름이 한자인 것도 마..
추락 아무것도 못한 채 흩날려 떨어지기만 하는 모습만 나를 닮았다. 화가 난다.
안녕 파랑 밤마다 우울해지면 무언가를 탐하고 싶어진다. 음식이던, 연기던, 술이던, 대화던. 확실한건 소화가 정말 ‘절대’ 되지 않는 기분이다. 음식은 먹고 싶지만 정작 먹으면 자꾸 속에서는 안된다며 거부한다. 내가 좋아했지만 이제는 못 먹는 음식이 많아진다. 국물이 많은 음식은 먹지 못한다. 걸쭉한 음식들 (순대국밥, 감자탕, 해장국 등 모든 해장국 종류. 어지러운데 해장도 못하다니) 치킨이나 튀김류같이 잘 부서지고 입자가 고운 음식, 유제품 (심지어 라떼까지), 밀가루 음식. 면류, 회 등.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쌀도 소화조차 힘들다. 더 말하자니 비참하다. 나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내게 포만감과 먹고 싶던 음식을 먹은 후의 감정은 언제부턴가 불쾌하고 부끄러운 감정만 남게 된 것 같다...
눈소리가 내게 말을 걸어 잠을 깨워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새벽 두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 되었을 때 목이 말랐다. 그렇지만 투명한 생수는 마시고 싶지 않았다. 향이 진한 메밀차나 녹차를 마시고 싶었지만 통장 잔고는 부족했고, 현금은 없었다. (사실 배도 고팠었지만 소화가 되지 않을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 집은 추운 편이다. 옷을 더 입고, 챙길 걸 챙겨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갔다. 차라리 차가운 물을 마시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차가운 얼음물을 한잔 마시고, 다른 컵에 따뜻한 물을 데워 믹스커피에서 커피만 덜어내 커피를 탔다. 차분해져 2층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내려앉는 소리.정말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눈이 말을 걸었다. 소복소복, 이런 흔한 표현이 아니라. 말 없는 소..
당연한 사실. 보편적이지만 개인적인. 그래.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누군가 떠나면 새로운 사람이 찾아온다. 그게 누구던.’ 이라는 뻔하디 뻔한 반복되는 같은 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맞다고 말해서 그게 진리가 된다는 그 과정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우리 집이 이사 오기 전, 어릴 적의 내 집에는 가훈이라고 불리우는 한지에 글씨를 적어놓은 큼지막한 것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 그것은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 두려운 사람들이 마음 속의 있는 것을 꺼내어 물건으로 표현해 낸 것’ 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큰 의미는 두지 않고, (조금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을 보이게 해서 조금 더 가까이 두고 많은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서 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튼, 그 것에는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너는 나에게 가끔 화(火)를 낸다. 네가 나를 향해 던져대고, 쏜 火는 대체 나에게 얼만큼의 상처를 줄 지 알고 쏜 건지 너에게 진심으로 울며 물어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내 마음을 알고 너는 나에게 火를 쏘아대고 있는 걸까. 그렇게 뒤늦게 한마디로 사과하는 게 내 가슴에서 너의 화살(火虄)을 뽑는 행위라고 혹여나 생각하고 있다면, 뽑는 것보다 과연 너가 그 후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더 나아가 한번 더 시위를 당기지 말아보는 생각을 해 보는건 어떨지 조심스레 묻고 싶다.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