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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십육일

eeajik 2018. 4. 16. 23:22

그런 생각이 드네. 정말 어쩌면 돌아갈 수 없는 건지, 내가 고른 방법은 어쩌면 과하게 한정적인 걸까 싶다는 후회 아닌 씁쓸함. 확실히 이젠 단정하고 말끔한 그런 계통의 트랙을 만들기에는 취약한 장비와 작업 루팅, 혹은 방식인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지인의 말대로 내가 손 대본 장르가 아니고, 분명 나는 그 부분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들을 공부 해 왔기에 긍정적일 부분이 분명 많다고 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늘 그랬듯이 나만의 자기검열 홈에 빠져서 어떤 면에서는 폐쇄적인 사람이 되어가진 않는지 자각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툭 건드려보는 요즈음이다. 제거하지 않는 옷의 부스럭거리는 잡음, 혹은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 소리, 자연스러운 공간감, 약간 느려지고 빨라지며 달라지는 템포. 내가 애착하는 편안한 느낌을 누군가는 분명 아마추어같다 생각하며 완벽하지 않고 지저분하고 허접하다 생각할 수 있으니까. 지인의 이번 곡의 작업을 포기했다. 도저히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기쁜 하루' 라고 이야기 하는 곡에서 그 어떤 소리도 떠올릴 수 없었다. 어쩌면 떠올리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밝고 빠르게 사랑을 말하는 노래를 작업한 후에 이름을 섞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바래본다' 까지는 마지수가 있어서인지, 그 때의 악기와 방식이 그 작업에 맞았혹은 둘 다 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가능했다. 이번엔 도저히 불가능했다. 세션 뷰를 켜고 가만히 바라보고 무언가를 시도하려 해도 나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르는 '이렇게 기쁜 오늘' 이라는 가사와 약간의 빠른 멜로디는 내게 아무런 것도 떠올리지 못하게 했다. 잠깐 잠깐 작업 해 보다 나온 지인이 좋다고 한 방향도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다른 프로듀서를 찾아보자는 결론을 짓고, 제주에서 올라오신 지인이 있다고 하여 곡을 넘기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폐쇄적인 걸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다른 직종을 하기에는 늦어버린 몸 상태와 생각들.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로 인한 왠지 모를 불안감.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걸까 싶은 점점 줄어드는 주변의 인맥. 나 말고는 모두가 앞서 나간다는 약간의 괴로움 섞인 자각. 동시대에서 노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부러움과 공포. 몇 년간 작업을 해 오고 공부하며 내 스스로 그래도 조금은 연약하게도 묶어 두었다고 생각하는 부분 단 세 가지. 이미지 감각 부분, 유약할 수 있지만 온연하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곡과 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내 작법, 그리고 내 머릿 속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작업 구상 방식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중심에 반드시 서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음악은 존재한다. 그렇다. 안타깝지만 내가 중요시 하는 저 세가지가 반드시 중심에 서 있을 이유가 없다. 이는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 아닌 변하지 않는 사실인 걸 알고 있다. 너무 의미를 다 담으려고 하는 걸까 싶은 자각을 종종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쓴 소리 하며 부정적이던 그 일을 내가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과하게 부여하는 걸까 싶은 적이 종종 있다. 사그라지는 순간들은 영원하다의 첫 번째 후렴이 마치면 나오는 제각기 다른 건반 소리는 가장 처음 곡을 만지던 때의 파편들이었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 때의 시간들과 향기, 그리고 새벽들과 공기가 떠오른다. 나는 그 모든 걸 다시금 곱씹고 나를 다독이는 편이다. 내 곡 이기에 내가 듣기에 가장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전하게도 위험한) 지론. 하지만 나는 그냥 누군가에겐 의미 없게 사소할 수 있는 자그만한 모든 것에 힘이 나고, 그 때마다 소리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애착을 갖는걸. 그렇지만 생각보다 누군가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테지. 오히려 지저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 분명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두 꿈 앨범이 나온 날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들리던 나무 피아노 의자의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원 테이크로 작업했기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약간의 노이즈들, 부스럭거리는 옷 소리. 처음 해 본 내 머릿 속 그대로 날것의 믹스의 서투른 부분들. 그 친구는 내가 깔끔하고 단정한 소리들을 해 왔기에 당연히 '이 아이가 모르고 넣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나에게 물어 왔다. 의도했다  하고 사실 정말 내가 하고 싶던 소리라고 말 했지만, 생각보다 이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어쩌면 어느 정도 내가 단정하고 완벽한 소리를 내는 법을 공부 했었고, 그런 정보가 섞인 작업들을 해 온 그 과거의 사실들이 그 친구에게, 혹은 지금의 작업 방식을 바꾼 나에게 까지도 이질감을 가져오는 것 같다. 손에 내가 원하는 무언가들을 쥐고 하나도 놓치지 않은 채 언제까지나 걸음을 옮길 순 없구나. 단순하고 당연한 이 사실을 오늘 다시금 문득 자각했다. 무언가를 가지려면 무언가를 버려야 하는구나. 내가 원하고 동경하던 소리에 갈증을 느껴 참다 못해 전부 정리하고, 이제서야 이제서야 공부하고 작업하기 위해 장비와 방식들을 다 바꾸니 그 때의 내가 자연스레 할 수 있던게 사라졌구나 싶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나름대로 걸어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 문득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어떤 언행을 해 왔고, 어떤 소리를 해 왔고, 어떤 무언가를 가졌고, 버리고, 혹은 건드리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두고 왔는지. 모으는 장비들과 작업 방식도 그렇고 더 이상 무엇이 가능한지 다시금 점검 해야겠다. 어디로 다가가야 하는지. 첫 걸음을 어디로 떼어야 할지. 한이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자기는 음악을 극단적으로 쉽게 보는 사람이고 나는 극단적으로 어렵게 보는 사람인 것 같다고. 그 사실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기검열이 심하다. 누군가가 내 음악을 많이 아직은 듣지 못했을 테니 함부로 판단하기에는 어렵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어리고 참 나약하고 모자라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의식한다. 뚱뚱해서 보기 흉하다고, 피부가 더럽다고, 냄새가 지저분해서 기분 나쁘다고, 저리 가라고, 자기들이 모르는 일이라고 날 거짓말쟁이라며 말하고 혼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에서 혼자 책 보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오히려 더 많은 누군가를 의식해야 한다. 기타를 녹음할 때 DI 로 반드시 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하지만 나는 요즘 마이크를 작게나마 공부해 가며 녹음을 해 보고 있다. 그 작은 사실이 그토록 다르다. 여로에서를 들으며 화성학을 다시금 꺼내 공부 한 날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날이다. 그냥 그런, 십육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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