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숨의 궤적을 몰아쉬며 매일 검푸른 밤을 보낸다.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를 서툴고 더딘 걸음의 종착지는 사실 첫 지점 그대로였다. 나는 여전히 밖과 안에서 소리만을 찾고, 무형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고, 감싸안기 위해 수많은 나를 버린다. 인간의 손은 고작 두 개 뿐이고, 품은 좁기에 매번 심장 언저리는 아파진다. 우리는 단지 계속 양 옆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라는 누군가의 담론처럼 내가 원하는, 아니 어쩌면 원하지 않는 모습조차 첫 장소 그대로에 있었다. 그리운 것은 장소가 아닌 시간, 움직임은 모두가 아닌 내 스스로. 위 혹은 아래라 칭하는 여타의 방향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비하고, 낭비하던 것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과 싫어하는 내 모습은 항상 균형감 따위 없이 곡선으로 유지된다. 묵묵함이 능숙..
나는 왜 이리도, 그리도 소중한 것들을 지금 오늘까지.
왜 발매해도 별로 안 기쁘지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는 서로를 명확히 당연스레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쩔 수 밖에 없고, 가혹함은 언제나 한 쪽에게 더욱이 치닿는다. 종종 어떤 결정은 모두가 의미를 알 수는 없겠지. 그럼에도 구김살이 많은 건 언제나 속상하다. 나는 왜 직설적임을 두려워할까, 가끔은 그게 가장 먼저여야 하는 세계인데. 행복이라는 단어는 마주할 때 마다 눈물이 난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다만 언제일지 모를 포근한 겨울을 향해 매일 음악을 짓고 들으며 글을 적고 사진을 남긴다. 꼭 긴 글이 아니더라도 우린 알 수 있으니까. 종종 짧은 문장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내게 그토록 음악과도 같은 존재이다. 다녀올게, 너도 잘 다녀와.
며칠 전, 세계를 스스로 거부한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공교롭게도 나는 오래 전 부터 알아온 다른 친구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열 아홉이 지나 막힘없이 어디에서나 술을 마실 수 있던 그 때, 그 친구를 처음 알았다. 그럴듯한 유명 예술 대학 어디에도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던 나는 반쯤 포기한 채 혼자서 다시금 홀로 방에서 음악을 짓고 있었고, 그러던 중 주변의 소식으로 어쩌다보니 충정로에 위치한 학위 인정 전문 학교를 알게 되었다. 정시가 남아있었지만 언어를 제외한 수능 점수와 내신, 출석 상황이 좋지 않던 나는 기대를 않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도 배울 것이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학위 등 타이틀에 더욱 예민하던 시기였고, 당연히 학위 인정 학교는 좋은 눈길을 받을 ..
미루던 작업실 청소를 마쳤다. 무거운 마음으로 아끼던 악기들을 판매했고, 그 외에도 당장 사용할 장비가 아니면 전부 정리했다. 피부가 잘 나아지지 않는다. 예전만치 상처 복구가 빠르지 않다는 점이 나이를 다소 체감하게 한다. 면도를 더 신경써서 해야 하는구나. 아이맥이 상태가 좋지 않다. 맥북으로 작업을 진행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다. 백업을 진행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전부 재설치를 해야할까. 눈이 나으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아프다. 나는 죄를 짓고 사는구나.
언젠가부터 광화문은 내게 숫자 섞인 작별의 섬이 되었네. 교보문고에서 폴더폰을 붙잡고 멍하니 서 있다 말 없이 1711을 타고 돌아간 날, 10대의 반을 보낸 볼펜 향기 섞인 이와 더는 연락을 하지 말자며 청계천에서 씁쓸히 웃고 7016을 타던 날, 전화를 받고 급히 광나루로 가서 100번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주책맞게 정작 나는 왜 우는지도 모른채 울던 날, 그 밖에도 차마 적지 않는 수 많은 작별. 종종 다른 이들에게는 풍화의 전날이라 기억에 남는다 말하지만 나는 네가 떠난 날로 오늘을 기억하네. 오늘 서울은 멍청할 정도로 흐릿하게 비가 왔다. 오늘은 풍화를 들었다. 내가 가장 아플 때 만든 그 앨범은 그래서 자주 듣지 못한다. 수 많은 환청과 환각, 그로인한 혼잣말이 가득 담긴 아프지만 고마운 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