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알았다. 어쩌다 보니 만나서 술을 한 잔 했던 것 같다. 작은 시작이 누구나 그렇듯이 왜인지는 뚜렷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주 가지 않는 홍대의 술집에서 사는 이야기를 그럭저럭 나누다 가사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쓴 제목과 가사가 말도 안되게 깊고 좋았다. 사실 그 자리의 그 순간의 풍경이 기억날 정도로 적잖이 놀랐었다. 지금도 그 두 곡의 제목을 기억한다. 그 다음부터 몇 번 만나서 이것 저것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곡을 편곡 ‘해 주기도’ 했었다. 짧게나마 음악과 악기를 알려주기도 했었다. 서로의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며 주변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비슷한 음악 취향 덕인지 같이 노래하기도 했다. 사랑해 마지 않는 몇 카피곡으로 공연도 하고, 내 친구들과 함께 작업실에서 이야기도 ..
“거식증이 오면 살도 빠지고 좋겠네, 적어도 지금보다 행복할 것 같은데” 라고 언뜻 언뜻 내뱉고 생각하던 100kg 가까이 되던 거구였을 그 때. 누구나에게 비웃음 당하고, 혼자 길 걸으면서 흐린 시선을 내게 오는 시선이라 믿어 넘기며 피해다니고, 나 자신이 비어 있던. 소중하지 않다고 접어둔 나를 내가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 탓에 채울 수가 없던 뱃 속에 음식과 외로움만 꾸역꾸역 씹어먹던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제법 이해해 보려 되삼킨다. 물론, 그 때의 나를 탓하진 않는다. 그럴 만 했으니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도 아팠다. 지금과는 다르게도 아프고 지겨웠고 저릿할 정도로 눈물지었던 눈시울만 있었다. 이해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게 아프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사람이 있겠지. 단지 아픔의 총량은 비..
외모에 대한 모자람. 자기혐오.
나는 과거의 아름다움이 추억으로 남는 줄 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좋은 기억이라서 내가 추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기에 추억하는 거였다. 사소함은 깊숙히 박힌다. 옛날 살던 집 오른쪽 벽에는 흰색 분필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고, 현관문의 유리는 푸른빛이 돌았다. 학교 놀이터에는 신기한 돌멩이가 많았고, 화단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았다. 추억은 감히 내가 하는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추억되는 거구나. 추억이 나를 먹는구나. 안녕, 오래 전의 나와 너. 너희는 무슨 이야기를 하며 지내고 있니. 이겨낼 수 없는 시간, 기억, 편린, 추억. 나를 덮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그린 곡. 나는 잊지 않고 사는구나. 추억하는 법을, 추억에 먹히는 법을 잊지 않고 사는구나. 그 반짝이는 순..
그 나이의 나는 나를 가사로 적을 수 있을까.
불쾌한 꿈을 꾸었다. 술에 마뜩히 취해 돌아와 누운 침대에서 나는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마치 어린 듯 어떤 사람 앞에서 주제를 받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제는 솔직함. 나는 솔직함이라는 걸 찾지 못해 흰 종이에 온갖 색을 손바닥과 붓으로 덕지덕지 묻히고 기름을 풀어내고 물을 섞은 후 얼리고, 그 다음 그 위에 찢은 골판지 등을 붙이고 까만 크레용으로 [미안합니다] 라고 적었다. 손을 닦고 오니 내 그림을 본 그 어떤 사람은 그걸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며 이건 아무것도 아니고, 솔직함이 아니라 말했다. 나에겐 솔직함이 맞았는걸요. 나는 웃으며 이건 저에요. 제 그림이에요. 하고 눈물을 삼키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내 그림에 성냥을 던져 넣고 나왔다. 지금은 옆에 없는 내 친구가 문 밖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