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을 가두던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 온통 다 버려 형태도 알 수 없는 재를 모아두듯. 그것들에 의존하여 낯모르는 인간의 표정을 나는 적었다. 버려진 말들과 적자 마자 죽어버린 말들과 죽어도 죽지 않는 말들을 모아두고서, 나는도무지 멈출 수 없었던 칠흑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던, 잠시이자 종착으로 믿게 되던, 그러니까 몸으로 굴러가며 아니고 싶었던 눈멀고 환한 그때에 대하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그 심정과 절망을, 훈장처럼 달고서 온 길을 걸었다. 나는 아주 멀리까지 달릴 수 있었고, 그것은 바람이었다. 더없이 높고 거친 산이었다. 그곳에 위협하듯 자라나고 있던 나무들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나는 이것들을 다 쓸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이 모름을 찾아가고 있었다.
낡은 그릇에 독을 풀어도 갈증에 지친 마실 사람은 마시겠지
어쩌면 '말' 이라는건 내 안의 '나' 라는 커다랗게 옭아진 덩이를 한 올 정성스럽게 풀어내는 동작이 아닐까. 조심스레 풀어내며 '말' 을 섞으면 서로 묶이기도 하며 어우러지기에. 어쩌면 우리가 귀로 듣는 말 소리라는건 단지 숨을 쉴 때 섞여 나오는 소리의 일부 정도의 가치 뿐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내게 말은 오히려 하지 않을 때 가장 완벽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말을 한다는 건 (대화를 한다는 건) 나를 풀어내고 나를 그 사람에게 선물하는 가혹하고 숭고한 행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서로 공명한다. 공명하고 교환한다. 아직 우리는 하나의 방법밖에 사용하고 있는 걸 지도 몰라. 그 사람을 알기 위해 그 사람을 해치는 방법. 서로가 다를 수 있기에 침묵할 수 있고 공명할 수 ..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어릴 적의 나는 정말 눈치 않고 고모와 고모부 사이에서 행복했을까.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까. 나를 신뢰하지 않아 보는 그 순간 명확해지는 법이다. 어릴 적 나를 나는 전혀 기억하지 않으려는 건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의지. 의지가 좋아 요구 조건대로 쌓다 보니 지치기만 하네. 나는 나를 더 시키고 필요로 한다. 무언가를 잘 하면 존중하고 여유를 주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 훈육이란 말로 매를 맞을 때 타인에게 맞는 기분이어서 더 무서울 수 밖에 없다는 상담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전혀 혼나는 기분이 아니었다. 단 한번도 훈육이라 느낀 적이 없다. 맞고 싶지 않아서 사과할 뿐. 99를 하지 않다가 1을 하니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지지대 없는 찰흙. 소탐대실. 그렇게 천천히..
심장박동이 옆사람과 따라 뛰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요즈음 종종 가끔 새벽이 고무찰흙같다는 생각을 한다, 구름과 공기와 허공과 어둠이 마구마구 덕지덕지 들러붙어있는 덩어리. 꼬리가 잡힌 밤은 항상 아침을 뿌리고 도망간다. 인간에게는 당연스레 오감이 존재하는데 청각만으로 만족하기에는 부족하다. 표현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우주는 인간을 품고 있으며 인간 또한 우주를 품을 수 있다. 인간은 어쩌면 우주 그 자체이기에 체온이 담을 수 있는 온도를 말한다면 감정의 변화, 인격의 상징, 궁극적인 바램, 생각의 색채 등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실히 광대하다고 할 수 있다. 변하지 않은 채 일정하며 인간과 동물, 식물까지 모두 지니는 공평한 것. 그러므로 누구나 와닿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손 내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