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꽤나 바쁘다. 그렇지만 누구도 몰라주는 바쁨일 터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손 건네지 못할 걸 (않을 걸) 안다. 매일 녹음을 해야 하고, 사람을 새로 알아가고, 관리를 해야 하고, 합주를 해야 하고, 이번 주 토요일에는 나를 촬영하고, 일요일에는 (심지어) 공연을 두 번이나 해야한다. 나를 다듬는 일이라 자위해도 돈이 나가는 일만 생기고 들어오지 않는 건 힘들다. 어제는 너무 아끼는 둘과 술을 마셨다. 막걸리는 머리가 찡하고 속이 찌르르거리지만 자꾸 흘려넣게 된다. 사랑과 우정은 확연히 다르다. 그 정도는 서로 안다. 남녀사이라는 전제 뿐 만이 아니라, 추가적인 요소가 있다면 남녀 사이에 우정 그 이상과 사랑 이하는 분명 가능하다. 생일이 슬프고 기분이 나빠 알고 있어서 연락을 해 준 고마운 사람을..
소음이 없는 나라. 침묵이 일관하진 않지만 잡다한 소리는 없다. 아름다움을 애써 표현하려 하지 않고, 말 없이 선과 글자로 말하는 아름다움. 엄청나게 맛있는 화려한 음식은 없지만, 한 종류의 음식이 빛나는 나라. 맥주가 너무 맛있다. 몇 종류의 맥주를 매끼마다 마시는데 이렇게 대단한지. 슈바인학세, 슈니첼, 그 어떤것보다 나는 빵과 사과주스와 맥주가 맛있다. 소시지로 유명하다는 것, 그건 어쩌면 맛보다 그걸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인지도. 독특하게도 태국 음식이 맛있었다. 커피, 커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뒷맛이 남지 않는 우아한 커피. 어쩜 이렇게 부드럽게 흘러가는 맛인지 마시면서 계속 감탄이 나왔다.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서울에 가면 왠지 모르게 이 차분함이 그리울 것 같다. 저녁 여덟시 반 만..
겨울비 온 날 밤 꿈, 죽은 친구가 꿈에 나왔다. 얼음으로 가득찬 학교였다. 발을 헛디디면 얼음 속 심연에 빠져들 것만 같은 학교였다. 길을 잃어 나갈 길을 찾으려 했지만 백야가 펼쳐진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길이었고, 익숙한 듯 낯선 사람들이 교실에 가득 모여 울기도, 웃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피아노를 치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말없이 쭈그려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다. 조용히 숨을 다듬으며 골목을 돌았고. 긴 행진을 보았다. 그 사이 그 아이가 보였다. 내가 무릎을 꿇고 울었다. 한 번 술 한잔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함께 울며 괜찮다고 안아주며 울지말라 했다. 친구에게 고개를 파묻고 울었고 친구를 다시 한번 보냈다. 그 밖에 내가 알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나와 눈..
내가 사랑하는 날씨였다. 겨울비가 아름답게 주륵 흘러내리는 종일이었고, 나는 두 시에 눈을 떠서 물을 마시고 다섯시 까지 누워 있었다. 다음 주 월/화/금은 합주고, 수요일은 공연, 목요일은 작업이 있으니 푹 쉬려던 참이었다. 어제 같이 있던 형에게 잘 들어갔나 연락을 했다. 비가 온다고 서로 말하던 중, 친구와 함께 있을테니 카페로 오란 말을 듣고 우울한 중 씻고 준비를 했다. 면도를 안 한지 이틀이 되었어서 깔끔하게 면도를 했다. 기르고 면도하는 기분이 참 좋다. 형과 친구는 내가 도착하니 나설 준비를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게의 일본 카레를 먹겠다고 해서 같이 가고 싶었지만 후회하고 토할 걸 알아서 꾹 참고 먹지 않았다. 아니, 못 먹었다. 참 싫다. 다른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시켰다. 청보리..